* 2017.09.27 츠키시마 케이 생일 기념 츳키른 생일 합작 투고
* 합작 링크: http://happybirthday-tsuki.com/








「미안해, 츳키. 오늘은 꼭 갈게. 지금 완전 달리고 있어.」

「안 그래도 되니까 천천히 하세요. 실수했다가 저번처럼 새벽에 뛰쳐나가지 말고.」

「진짜 미안해. 생일 축하해 츳키.」

「네, 네. 고마워요.」



한숨을 크게 쉬고 대충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놓는다. 9월 27일 오전 1시 45분. 그는 야근에 치여 오늘도 집에 들어오질 못했다. 0시가 되자마자 진동이 몇 차례 울리고, 앞다투어 도착하는 생일 축하 메시지. 야마구치, 형, 엄마, 아빠, 과 동기 몇 명, 아르바이트 사장님 그 외 등등. 그 메시지들에 하나하나 고맙다는 짧은 답을 보낸 뒤에도 쿠로오씨의 메시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생일이니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심 좋은 사장님의 메시지에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따 뵐게요.」하고 답장하고, 어쩐지 일찍 자고 싶지 않아 영화라도 볼까 뒤적거리다 역시 그냥 자는 게 좋겠다 싶어 노트북을 껐을 즈음. 그제야 쿠로오씨의 라인이 도착했다. 알 수 없는 모음과 자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짧은 메시지가 몇 차례 오고 나서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제대로 된 문장이 도착한다. 제 손이 뭘 치고 있는지 바로 파악도 못 할 정도로, 쿠로오 테츠로는 바빴다.


고등학생 시절 부 활동의 합숙에서 만나 연인 사이가 된 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먼 거리에서 서로 애타는 연애를 해오던 우리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대학으로 입학이 결정된 후 바로 동거를 시작했다. 그렇게 또 몇 년. 도쿄에서의 생활에도, 대학생으로서의 삶에도 적응하기 바빴던 나에게 어느새 그것은 일상이 되었고, 쿠로오씨는 대학을 졸업해 사회인이 되었다. 번듯하고 벌이도 괜찮은 '좋은' 직장의 신입 사원으로. 그 좋은 직장의 한 가지 큰 흠이 있다면, 야근이 잦은 데다 한 번 야근하면 퇴근이 늦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도. 덕분에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얼굴 한 번 마주치지 못하는 날이 잦았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기척 하나 없이 불 꺼진 고요한 집에 온전히 혼자 남겨진다. 혼자 살아본 적도 없고, 지금도 혼자 살고 있지 않아 나에겐 아주 낯설었던 그 외로운 풍경. 그것도 이젠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을 만큼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서운해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피곤함에 푹 절어서도 혼자 둬서 미안하다는 그의 얼굴을 보면,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은 밖에서도 질릴 정도로 많이 했을 테니 나한텐 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며 괜찮은 척 어깨만 으쓱해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젠 익숙해져서 진짜로 아무렇지 않으니까. 그게 설령 9월 27일. 내 생일이라고 할지라도.



생일이라고 해봐야 뭐 특별한 게 있겠어? 날이 밝으면 수업을 들으러 나가야 하고, 적당히 밖에서 점심을 때우다 오후 수업을 듣고. 마침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이니 일을 하고 돌아오면 이미 까맣게 밤이 내려앉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다. 오늘도 그런 하루가 될 것이다. 생일 당사자인 나도 이렇게 덤덤하니 다른 사람이라고 별다를 것이 있겠나. 그저 생일을 빌미로 오랜만에 연락해 서로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짧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할 뿐. 매해 생일선물을 보내오는 형과 야마구치 덕분에 아아- 그러고 보니 생일이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는 정도지만, 그것도 며칠 미리 택배로 보내오기 때문에 당일엔 덤덤할 뿐이다.


인심 좋고 오지랖 넓은 아르바이트 사장님은 그래도 생일이니 친구와 약속이 잡히거든 하루 정도는 빠져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감사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답장을 보내놓고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생일엔 쿠로오씨와 보내는 것이 익숙해져 올해도 딱히 약속을 미리 잡아놓지도 않았었고, 그렇다고 일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쉬자니 어차피 혼자 있을 거 돈이나 벌자 싶었다. 아무리 익숙해졌대도 혼자 불 꺼진 집에 들어오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


이불에 파고들어 잠을 청했다. 생일은 이제 막 2시간을 지났을 뿐이지만, 나는 오늘도 쿠로오씨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 * *





그러고 보면 작년 생일은 어땠더라? 생일이니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주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단 쿠로오씨의 성화에, 서로의 수업이 끝나고 번화가의 카페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덤덤한데 뭐가 그리 들떠있던지 맛집, 데이트 코스를 줄줄 검색해가며 아주 빼곡하게도 일정을 짜놨더랬다. 그런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하늘에선 비가 쏟아져 내렸다. 거리를 걸으며 이곳저곳 구경하다, 공원에서 가을바람을 즐기며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저녁엔 멋진 식사. 뭐 그런 데이트를 계획했나 보던데. 내가 음료를 마시며 기다리던 카페에 케이크 상자를 손에 든 그가 도착하자마자 앞이 보이지도 않게 더 쏟아지던 비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었다. 습기를 머금어 눅눅해졌는지 평소보다 처진 그의 머리만큼이나 처진 어깨를 보고 한참을 웃었었다. 스스로 만든 장난감을 자랑하러 달려오다 넘어진 애 같았다고 해야 하나.


"저녁 예약해뒀어요?"

"아니. 예약 안 되는 곳이래."

"그럼 그냥 들어가요. 먹을 거 적당히 사서."

"그래도 츳키 생일인데."

"계속 붙어있는 게 더 좋아요."


이미 다 마셔버린 유리잔의 빨대를 괜히 소리 나게 호록 빨아들이며 그렇게 말했더니,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듯 기쁜 얼굴로 그렇게 웃었었지. 그 얼굴에 괜히 나만 부끄러워졌었다. 그래도 생일이라고 작지만 꽤 근사한 숙소를 예약해둬 그곳에서 밤을 보내며 나름대로 분위기를 냈다. 빗속을 뚫고 오는 길이 꽤 험난했는지, 상자에서 꺼낸 케이크가 여기저기 뭉그러져 볼품없긴 했지만. 비가 온다며 시무룩해졌던 쿠로오씨의 모습과 케이크가 어쩐지 닮아있어 또 한참을 웃었었다. 웃은 벌로 밤엔 꽤… 괴롭힘을 당했지만.


하나도 멋지지 않고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은 생일이었지만, 그런 소소한 것들이 즐거웠다. 모양이 찌그러졌지만 내 입맛에 꼭 맞는 케이크와 좁고 소박해도 분위기 내기엔 이만한 게 없는 숙소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그런. 이제 막 어른의 반열에 오른 우리에게 꼭 맞는 어딘지 서툰 특별한 날.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소박한 기념일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바빠지겠지. 그가 간신히 신입사원 타이틀을 벗고 눈치를 조금 덜 보는 위치에 오르고 나면 그다음은 내 차례가 될 거고. 어쩔 수 없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이벤트마저 특별하게 보내기 힘들 정도로 각박한 삶을 사는 것.


괜찮다고 했어도 생일을 혼자 보내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건지, 아니면 그와 서로 눈빛과 살을 맞댄 지 너무 오래된 나머지 외로움을 타는 건지. 답지 않게 감상적이 되었다. 수업은 오늘따라 지루했고, 집중도 영 되지 않아 별 의미 없이 펜만 빙글빙글 돌리며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린다. 어쩐지 오늘 하루는 굉장히 길 것만 같았다.



"츠키시마, 오늘 생일인데 일정 없어?"

"알바."

"이런 날 무슨 알바야! 하루 째고 한잔하러 가자."



평소 그럭저럭 친하게 지낸 과 동기가 넉살 좋게 손을 꺾어가며 술자리를 제안해왔다. 오늘 시간 되는 놈들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보내자면서. 어차피 사장님도 허락해준 김에 밖에서 놀다 들어갈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역시 아니다 싶어 적당히 거절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하루 시끄럽게 보내는 것이 적적한 것을 달래기엔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쿠로오씨가 일찍 집에 왔을 때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빈집이 아니라 나였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래도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 걸지도. 그게 그에겐 부담이 될까 싶어 괜찮은 척 하긴 했지만…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학교 주변에서 시간을 때우다간 떠들썩한 동기에게 그대로 끌려갈 것 같아, 일부러 좀 더 빨리 출근했다. 어쩐지 혼자 있기는 싫으니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고 싶었다.





* * *





결국, 아르바이트 중간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도 일찍 퇴근하긴 틀린 것 같아 미안하다고. 친구랑 약속이라도 잡고 혼자 있지 말라며 거듭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는 그에게 알겠으니 걱정하지 말라 안심시킨 뒤 짧은 통화를 끝냈다. 친구랑 놀라니 이미 늦었거든요? 그렇지만 자기 때문에 친구와의 약속까지 거절했다는 이야길 하면 그는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해할 것이 분명하므로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였네.


그의 이번 야근은 유독 길었다. 내 생일은 둘째치고 그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할 정도로. 그가 힘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떼를 쓰거나 서운할 티를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프로젝트 막바지라고 했던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사람 좀 작작 부려먹어야지. 이젠 그의 회사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오면 푹 쉴 수나 있게 해줘야지.


아르바이트에서 적당히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어둡고 조용한 집. 옷을 갈아입고, 씻고, 물을 마시고, 적당히 TV 채널을 돌리다 소파에 늘어졌다. 「생일은 잘 챙겨서 보내고 있어?」 형의 메시지에 핸드폰에 밝게 불이 들어온다.


「뭐, 적당히」

「케이크 사진이라도 찍어서 자랑 좀 하지」

「됐어. 무슨 자랑이야.」

「아무튼 잘 지내고 있으면 다행이야. 생일 축하해 케이!」

「고마워」


하여간 눈치 없는 형 같으니. 혼자 보내고 있다고 하면 같이 사는 것도 허락해줬는데 감히 동생을 혼자 두었다며 불나게 화를 낼지도 모르는 일이라 적당히 답장해 넘긴다.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닌데. 단순히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신경쓰인다. 역시 이런거 의식하지 않고 모르는 채로 지나가면 아무 일도 없을텐데.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괜한 서운함만 들고. 이러다간 쿠로오씨가 와도 짜증만 낼 것 같아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오후 10시. 어차피 지금 이 시각까지 연락 없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오늘도 퇴근은 글렀다는 얘기다.





* * *





"츳키."

"으응…"

"깨워서 미안해. 더 잘래?"

"아니… 으응… 쿠로오씨 왔어요?"

"응. 다녀왔어."


귓가를 간질이는 작은 목소리. 혹시라도 깨지 않으면 그대로 자게 둘 생각이었는지, 잠결에 듣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당연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다행히도 그 목소리에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눈이 채 떠지지 않아 허우적거리는 몸을 그가 안아온다. 그 몸에 얼굴을 부비며 잠을 깬다. 지금, 몇 시지. 이 사람 결국 퇴근을 몇 시에 한 거야.


"생일 축하해, 츳키. 간신히 날짜 지나가기 전에 말했네."

"라인으로도 했으면서."

"직접 말하고 싶었단 말이야. 얼굴 보고."

"으음… 지금 몇 시예요?"

"11시… 48분."

"하하. 약속 지켰네."

"응?"

"오늘 온다고 했잖아요."



그러게.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가 웃는다. 아. 너무 오랜만이다. 이렇게 서로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이는 거. 시간만으로 따진다면 사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닐 텐데, 조금만 곁에 없어도 쉽게 외로움을 탄다. 연애 초반엔 거의 3년 가까이 몇 번 만나지도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땐 어떻게 참았지.



"친구랑 좀 놀았어?"

"아뇨. 그냥 아르바이트 갔다가 일찍 자고 있었어요."

"만나서 놀라니까…"

"놀았으면 당신 왔을 때도 집에 없었을걸요."

"그건 그렇네. 그럼 초도 못 껐지? 바로 달려오느라 케이크는 못 사 왔지만…"



그가 주머니를 뒤적이다 작은 일회용 라이터 하나를 꺼낸다. 뭐야, 이 사람 힘들어서 담배라도 시작했나? 그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니 손사래를 친다. 옆자리 동료 라이터를 빌려온 것이라고. 거의 다 쓴 것이었는지 몇 번을 당겨야 간신히 불이 피어오른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에 작은 라이터 불이 켜지고, 그 불빛에 마침내 그의 얼굴이 밝게 비친다. 눈에 담긴다. 많이 지쳐 보이는데도 여전히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자. 이게 생일 초 대신이야."

"하나밖에 없는데요?"

"으음… 대신 촛불보다 몇 배 화력 세니까. 그걸로 어떻게든 된다고 하자."

"뭐어, 좋아요. 좀 억지 같지만."

"생일 축하해, 츳키."

"고마워요."


소원을 빌라는 그의 말에 열심히 고민해본다. 소원. 뭐가 좋을까? 자다 깬 머리로 생각하려니 영 뭔가 떠오르지 않아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려니, 오늘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며 보챈다. 어느새 11시 53분. 뭐야, 이럴 때만 시간 진짜 빠르네. 으음.



"정했어요. 올해에도, 내년에도 생일에 이런 선물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무슨 선물?"

"쿠로오 테츠로가 끌어안고 키스해주는 거요."

"하하. 나 아직 안 줬는데?"

"그러니까 달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가 부드럽게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살살 훑듯 간질이는 이 손길이 좋다. 후- 하고 라이터를 불자, 그가 얼른 라이터의 부싯돌에서 손을 뗀다. 활활 타던 불이 순식간에 꺼지고, 방엔 다시 어둠이 내려앉는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시간은 이 작은 대화에도 벌써 2분이나 지났다.


"빨리요. 오늘 해줘야지."

"알겠어. 내일까지 해줄 테니까, 각오해."


킥킥 웃는 입 위로 그의 살짝 까칠해진 입술이 포개진다. 아. 이제야 왔다. 나의 일상. 나의 하루를 매일과 같은 평범한 하루로 만들어주는 사람. 굳이 특별한 날 특별한 것을 기대하느라 신경이 곤두서있지 않더라도, 나의 하루를 온전한 하루로 만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더, 특별한 사람. 서로를 부서질 듯 끌어안고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며 마음을 나눈다. 우리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주고받지 못했던 만큼. 하나도 격렬하지 않은 느릿한 키스. 서로의 일상에 녹아들어 이제 함께 있어도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하루하루처럼.


살짝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뗀다.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어둠에 익은 눈은 깜깜한 와중에도 사랑을 가득 담아 나를 바라보는 눈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나 씻고 싶은데, 같이 씻자."

"에- 나 씻었는데."

"그럼 씻을 구실을 먼저 만들어야 하나-"

"멘트 진짜 구려."


웃으며 다시 장난스럽게 입을 맞춘다. 핀잔을 주긴 했지만 그를 끌어당겨 침대에 눕는 것은 내 쪽이다. 헐렁한 옷 속을 노닐며 몸을 어루만지는 손은 굳이 막지 않았다.


"내일 오전 수업 아니야?"

"당신도 출근이잖아요."

"하루 휴가야. 프로젝트 드디어 마감했거든. 포상휴가."

"그럼 나도 안 갈래."

"그래도 돼?"

"아팠다고 하죠, 뭐. 대신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해요."

"좋아. 그럼 아플 구실도 만들어줄게. 일단 씻을 구실부터."

"그 멘트부터 일단 어떻게 좀 해봐요."



장난스러운 웃음 속에 옷가지 스치는 소리가 섞여든다. 웃음은 곧 입술 사이의 촉촉한 물소리 너머로 사라졌다. 좋아해. 저도요. 가을의 밤바람 같은 속삭임을 주고받으며 몸을 포갠다. 아마 시계는 이제 더는 9월 27일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 테지만, 상관없다. 쿠로오씨는 이제 막 왔는걸.



생일은 이제 막 몇 분 지났을 뿐이다. 시계는 보지 않을 거야. 나의 생일은 이제부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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