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삶을 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하필이면 이런 장르로 흘러가버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눈 앞에 무서울 만큼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권총도, 제 앞에 앉아 총을 바라보던 연인이 늘 보아왔던 덤덤한 표정으로 스탑워치를 맞추는 것도, 좀처럼 현실감이 없다. 젠장, 이게 뭐야. 다 미친거야?

츠키시마가 스탑워치를 내려놓았다. 시계는 아주 찰나의 순간 5:00라는 숫자를 화면에 비춘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째깍이는 초침소리가 그와 나 사이의 적막을 뚫고 사정없이 귀를 때린다.

 


"젠장. 그 초침소리 미칠 것 같아. 치워버리면 안돼?"

"안돼요. 제대로 신경쓰지 않으면 5분은 금방 지나간다구요. 바보처럼 가만히 있다가 시간만 버릴 수는 없잖아요."

 


넌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이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표정이, 지금은 조금 낯설다.

눈 앞에 놓인 이 총을 쥐고 누구 한 명의 인생을 끝장낼지, 아니면 모두의 인생을 끝장낼지 결정하는 것은 나다.


그리고 그 어느 쪽으로든 결국 타의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 것은 너야. 츠키시마.

 


"뭐, 답지 않게 드라마틱한 결말이라 얼떨떨하긴 한데, 나쁘진 않네요. 쿠로오씨가 죽일까 말까 고민해야 하는게 저라는 것도, 기분 꽤 괜찮고."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항상 여유롭기만 하던 그 얼굴이 이렇게나 망가지는 걸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눈 앞의 연인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양 손을 들어 나의 볼을 감싸왔다. 남들보다 조금 체온이 낮은 손. 난 이 손을 좋아해 츠키시마. 남들보다 열이 많은 나에게 딱 맞춰진 듯 차갑고, 커다랗고, 마른 이 손을.

 


"어떡할거에요?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간, 계속 가고 있는데."

그 말에 퍼뜩 감상에서 깨어나 시계를 쳐다보았다. 잠시 잊고 있던 초침소리가 다시 나의 고막을 파고든다. 남은 시간 4분, 아니 3분 59초. 58초.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알아요. 하지만 그래야해요.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생각보다."

"...왠지 의외네."

"그러게요. 하지만 그건 쿠로오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네가 다시 한 번 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안경 너머로 비추는 그의 눈이 마치 다 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을 때, 머릿속으로 하나 둘 익숙한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켄마, 아마 지금쯤 방에서 한창 게임을 하고 있겠지. 저번에 새 소프트가 나왔다고 눈을 빛냈었으니까. 최소한 자세는 똑바로 하라고 늘 잔소리하고 있는데, 아마 오늘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네코마는 어떻게 하지? 야쿠는 늘 걱정이 많으니까. 그래도 카이가 있으니까 조금은 안심이다. 부주장이 든든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2분 50초.



"저보다 쿠로오씨가, 더 많지 않아요?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

"…."

"나 하나로 끝내요."

"…."

"그 사람들을 죽일 순 없어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아아. 그래. 의외라고는 했지만 이 녀석, 답지 않게 신경쓰는 사람들 꽤 많으니까. 190cm 가까이 되는 큰 키에, 조금 삐딱한 그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집에서 꽤나 사랑받으며 커온 그다. 지금 그의 눈엔, 그가 언젠가 여전히 자신을 애취급 한다며 볼멘 소리를 하곤 했던 그의 형, 늘 다른 반찬의 도시락을 싸주던 그의 어머니가 담겨 있을 것이다. 항상 시끄럽다며 불평했던 그의 소꿉친구도.


아마 너는 모를거다. 너의 눈동자가 떨릴때마다 내가 어떤 결심을 하는지. 항상 너의 앞에선 여유로운 척 했으니까. 날 가장 흔들어놓는 것이 누구인지 알면, 너는 분명 비웃을테지.



2분.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나 덤덤해보이던 그의 표정이, 남들이 보기엔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붙잡아주지 않으면 안돼. 늘 그래왔으니까.

손을 뻗어 흉흉하게 시커먼 쇳덩이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그의 손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것이었는데, 손에 닿는 이 쇳덩이가 내뿜는 냉기는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쾌했다. 그러나 흔들림없이 고쳐잡았다. 손바닥에서 땀이 베어나온다. 그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결심한듯이, 미묘하게 떨리던 그의 몸도 어느새 떨림을 멈췄다.

 


"그래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을테니까. 그건 다행이네요. 마지막에 보는 당신 얼굴이 꼴불견인건 좀 찝찝하지만."

"혼자 보내진 않아."


그가 다시 눈을 떴다.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언제나 보아왔던 그 익숙한 표정. 이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늘 귀여워했던 표정이다. 차가운 그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젠장. 손이 떨려. 꼴사납게.


"같이 갈거야. 나도."

"...총알, 하나밖에 없던데?"

"상관 없어 그런거."



그의 볼에 천천히 나의 얼굴을 가져가 볼을 부볐다. 키스하기 전 장난스럽게 늘 해왔던 익숙한 스킨쉽. 익숙한 냄새. 그리고 그의 익숙한 웃음소리.

"떨지 마요. 꼴사나워."

"알아. 놀리지마. 어쩔 수 없다고 지금은."



그가 양 팔을 들어 나를 감싸안았다.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제법 어른스럽다. 항상 애취급 하며 놀렸었는데, 이제 놀리지도 못하겠네.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비정상적으로 뛰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바보처럼.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너의 손에 안심하는 내가 있다.

 

 

1분.

"마지막으로 키스라도 하면 안되나? 보통 그렇게 끝나잖아."

"시간 안에 못끝낼텐데요?" 네가 웃는다.

 

30초.

"이왕이면 꽉 안아줘. 실수 안하게."

"네, 네. 그렇게 되면 저도 곤란하니까."

네가 나를 꽉 끌어안는다. 10초.

 


"가서 보자."

"네. 볼 수 있다면."

5초.

 


"사랑해, 케이"

"...저도요. 테츠로상."

3초.

2

1

 

 










 

미친듯이 째깍이던 초침 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단발의 총성이 조용한 새벽 하늘을 갈랐다. 이윽고 들려온 사이렌 소리와 웅성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평소보다 소란스럽기는 했으나, 일상은 마치 그들의 존재를 잊기라도 한 듯 평범하게 흘러갔다. 날이 밝고, 새가 울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하루를 시작한다.

마지막 순간 그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채로.

 



날이 밝았고, 끌어안은 두 남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미처 눈을 다 감지 못한 그들은 끝내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로 최후를 맞이했다. 








출처: http://jingjinglim.tistory.com/13 [임징징이 의식 저장소]

2016년 6월 3일 티스토리 업로드_포스타입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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