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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츠키 - 스무고개]

그의 사랑을 알아내는 스무 개의 질문들



*약 10,400자








일의 시작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이를테면 어제부터 이어졌던 이 말도 안 되게 바보 같은 신경전의 시작이 그렇다. 


신경전의 상대는 쿠로오 테츠로. 신경전이라기엔 내 쪽이 일방적으로 놀림당하고 있을 뿐이지만. 하지만 나까지 그렇게 인정해버리면 정말 지는 느낌이니까, 신경'전'이라고 굳이 쌍방향 설전인 양 말해본다. 어쨌거나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내 쪽에서도 이리저리 공격 방안을 모색 중이긴 하다. 씨알도 안 먹히니까 문제지.


아. 누구 페이스에 말려 들어가는 거, 딱 질색인데.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제 아주 당연하다는 듯, 블로킹 뛰어달란 말도 없이 쿠로오씨네 연습에 끌려간 뒤 늦은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섰더니, 네코마와 우리 쪽의 시끄러운 2학년들이 심각한 얼굴로 토론하고 있던 거다. 그러니까 니시노야씨, 타나카씨, 그리고 네코마의 그 모히칸 윙 스파이커 셋이서. 구성원이 저러니 굳이 자세히 듣지 않아도 주제야 뻔하다. 이미 저녁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떠난 뒤라 식당이 꽤 한산한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열띤 토론 덕분에 식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끄러웠다. 식판에 적당히 밥을 덜고 자리를 잡으려는 찰나, 시미즈상이라던가 이상형이라던가 하는 단어가 뒤섞인 괴성이 귀에 꽂혔다. 네코마의… 그러니까, 야마모토씨다. 우와 깜짝이야... 거의 울부짖는 통에 식당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쪽을 바라보았지만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곧이어 쿠로오씨의 짜증 섞인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다 먹었으면 나가서 떠들라던가 체력이 남아돌면 나가서 러닝을 뛰라던가. 


아. 맞다. 쿠로오씨 3학년이었지.


한바탕 소음이 오간 뒤, 자리에 앉은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떠들던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아 흘러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누구랑 누가 사귄다더라. 누가 후쿠로다니 매니저한테 관심이 있나 보던데. 등등. 역시나 여러 학교가 모여 며칠씩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소문이 꽤 많이 도는 듯했다. 뭐. 별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대화는 주로 리에프, 보쿠토씨, 쿠로오씨를 중심으로 흘러갔고, 거기에 아카아시씨나 히나타가 몇 마디 거드는 식이었다. 주로 누가 이렇다더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보쿠토씨. 그리고 틀린 정보를 정정해주는 것은 쿠로오씨. 이어서 아카아시씨의 '그러고 보니...'로 시작되는 목격담이 이어지고, 히나타와 리에프가 맞장구와 탄성으로 대화를 북돋는 모양새다.

그나저나 쿠로오씨, 발 진짜 넓네.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시끌벅적한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이야기는 내부로 튀었다. 발단은 리에프다.


"그러고 보니 쿠로오씨는여?"

"나? 나 뭐."

"못들어본 것 같은데. 애인 사귀어본 적 있어여?"

"있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 있구나.


"리에프는 몰라? 이거 연애사 완전 화려해. 얘기 시작하면 하루로 안 끝난다고."

"이 미친 부엉이가. 시끄러워! 그 정도는 아니라고!"


... 심지어 많구나.


"쿠로오씨, 오는 사람 안 막는 스타일이니까. 본인이 고백해서 사귄 적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에, 뭐야. 완전 못된 사람이네여."

"아 요즘엔 안 그래. 언제적 얘기를 꺼내냐. 저 이래 봬도 이제 로맨티스트 다 됐다구요. 예?"

"오옷 그럼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여?"

"없어!"


... ... 아. 지금은 없나.


이야기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 못마땅했는지 쿠로오씨는 이미 몇 분 전부터 비어있던 식판을 들고 일어나버렸고, 이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며 대화는 종료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함께 연습했던 사람들에게 대충 인사한 뒤 식당을 빠져나왔다.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던 저녁 식사 탓인지, 아니면 영 낄 수 없고 관심도 없던 대화에 휘말렸기 때문인지 조금 거북한 기분이 든다. 저녁 먹은 것이 살짝 얹힌 것일지도 모른다.


바람도 쐴 겸 소화도 시킬 겸 숙소와는 반대쪽으로 걸었다. 온종일 온갖 소음에 시달렸던 탓인지 착 가라앉아 고요한 밤공기가 마음에 든다. 헤드셋이 있었으면 딱인데. 그래도 가끔은 이런 조용한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환하게 불 켜진 건물을 뒤돌아 나가면 소음도 불빛도 거의 없는 조용한 공간이 나온다. 마음에 드는 적막함이다.


"오. 츳키! 뭐야, 바로 안 들어가고. 산책?"


... 마음에 들었는데.


"그냥 좀. 얹히는 것 같아서요. 소화도 시킬 겸."

"그거 먹고 얹혔다고? 완전 새 모이였잖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저녁 내내 누구씨네가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영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요."

"뭐야, 그건 나보단 리에프 탓이라고. 걔가 제일 시끄러웠잖아."

"쿠로오씨가 제일 신나 보이던데. 그 소문은 다 어떻게 알고 있는거에요?"

"아니 뭐. 우리 학교 여기저기 교류가 많잖아. 난 주장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듣는 거지. 발도 꽤 넓거든."

"헤에. 꼬투리 안 잡히게 조심해야겠네요. 어디서 내 얘기가 나올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 입은 매우 무겁답니다. 아까 그건 아는 사람끼린 다 아는 오피셜이라고. 1학년 정도만 모르지."

"헤-"

"그나저나 관심 없는 척하더니 다 듣고 있었나 보네."

"아니거든요."

"맞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흐응…"


또 놀리는 말투. 이 사람과 있으면 자연스럽게 흐름에 말려드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은근슬쩍 신경을 건드리며 말을 걸어온다 싶더니, 적당히 받아치다가 얼떨결에 매일 밤 당연하다는 듯이 개인 연습에 참가하게 되었다. 무시하려고 해도 어느새 그와 말을 섞고 있고, 피하려고 해도 정신 차려보면 내 옆에 와있는 그가 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까지 둘러가면서. 뭐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괜히 모나게 말해봐도, 눈에 힘을 줘 흘겨봐도 돌아오는 건 빙글빙글 웃는 웃음뿐. 세게 쏴붙이고 밀어내면 그만일 텐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문제다. 이쯤 되면 제일 큰 문제는 나인가.


다시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자연스럽게 밤길을 함께 걸었다. 낮엔 그렇게 덥더니, 발 위로 스치는 밤공기는 제법 서늘하다.


"츳키는 어때?"

"뭐가요?"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는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물어왔다. 오오 달 떴다. 풍경에 대한 시답잖은 감상이 뒤이어 따라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완전히 채워지지 않아 조금 일그러진 보름달이 구름에 반쯤 걸쳐져 있을 뿐이다. 아무 생각없이 하늘을 쳐다보면 한 번쯤은 보게 되는,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풍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도, 달을 보며 흘린 짤막한 감상에도 딱히 큰 대답을 원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살결을 스치는 밤바람이 어쩐지 대답을 재촉하고 있는 듯해서, 나는 입 안으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골랐다. 좋아하는 사람? 글쎄. 대답해야 할까? 고민할 것도 없이 무시해버리면 그만일 그 말에 동요하는 스스로가 짜증 나 미간을 찌푸렸다. 질문하는 사람이 문제다. 리에프나 히나타가 물어봤다면 짜증 내면 그만일 일이고, 보쿠토씨였다면 귀찮다는 듯이 쳐내면 그만일 일이다. 아카아시씨는… 글쎄. 이런 걸 물어볼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얼버무린다면 재차 물어볼 사람 같지는 않다. 쿠로오씨는 어떨까. 왠지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글쎄요."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것을 택했다.

... 그치만, 여기서 '당신인데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잖아.


"흐음? 뭐야.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지."

"있든 없든 당신한텐 말 안 한다는 소리죠."

"뭐야. 너무하네."

"별로."


내 대답에 불만을 느끼는 듯했지만, 예상외로 그는 그 이상 추궁하진 않았다. 한 번 흘끔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저 너머로 시선을 옮긴 채 느리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내가 봐도 어물쩍 넘어가려는 의도가 다분한 찝찝한 대답인데. 배려해주는 건지, 아니면 정말 별 흥미가 없는 건지. 전자라면 새삼 감동할 법한 부분이지만 후자라면 자존심이 상한다. 뭐야 진짜. 흥미도 없으면 이런 거 물어보질 말든지.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문득, 그는 어떤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굳이 별 흥미도 없는 주제를 물어와서 나에게 다시 던진 것은 그다.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지만. 물어봐서 뭐 어쩔 건데 하는 생각이 반, 궁금한 생각이 반. 그 상반된 생각이 서로 다투느라 입 안에서 질문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길 약 10초. 아니 체감 상 1분? "쿠로오씨는요?" 궁금함이 먼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아차. 다시 담아내기엔 너무 늦었다.


"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가 나를 돌아본다. 부러 마주 바라보지 않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척 해보았다. 채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먼저 튀어나간 질문을 자책하면서 최대한 관심 없는 척,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었던 척 평정을 가장해보았다. 저가 그랬듯 능청스럽게 넘어가면 그러시구나-하고 넘어갈 심산으로.


"있어."

"... 에."

"뭐야 그 반응은?"

"아니… 뭐 의외라고 해야 하나."

"에. 왜 이래? 아까도 말한 것 같지만, 나 꽤 로맨티스트라고."

"와. 아까도 생각한 거지만,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해봤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톡 쏘아보니 이내 흐응-하고 실없는 콧소리를 내며 어깨를 으쓱한다. 막상 있다고 들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묘하게 자존심도 상하는 것이... 그래. 얼마나 잘난 사람이시길래 이 사람이 로맨티스트씩이나 되시나 싶어 한 번 더 생각 없이 질문을 던졌다. "누군데요?"


"궁금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기대에 찬 눈. 뭐야.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냥 말해버리면 될 텐데. 갑작스럽게 눈을 맞춰오는 통에 내 쪽에서 오히려 당황해버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뭐… 조금 의외니까…"

"흐음. 그럼 맞춰봐. 스무고개야."

"에?"

"재미있잖아. 해보자. 질문 스무 개. 대신 대답은 솔직하게 해줄게."

"갑자기 뭐에요 그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거야. 스무 번 안에 못 맞추면 내가 물어보는 거 솔직하게 대답해주기."

"... 저한텐 별 이득 없는거 아니에요?"

"왜 없어? 궁금한 거 대답해준다니까. 뭐든지 물어보세요. 솔직한 쿠로오씨입니다. 자. 시작."

"아니. 잠깐만요. 제가 언제 한다고 했어요?"

"19개 남았어. 방금처럼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하?"

"19개."

"무슨 이런 억지가 다 있어요?"

"18개."




*  *  *





이게 끝이다. 정말 순식간에 어이없을 정도로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지금 이 귀찮은 상황이 된 것이다. 내 동의도 없이 시작된 이 바보 같은 스무고개는 그의 어이없는 억지 덕분에 빠르게 남은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 후로 계속 뭐 물어볼 것이 없냐는 둥, 아까 보여줬던 나에 대한 관심은 다 어디 갔냐는 둥 귀찮게 굴더니, 말끝만 올리면 그것도 질문이라며 남은 수를 하나씩 줄여나갔다. 당연히 제대로 된 대답을 들었을 리 없다. 제대로 된 질문도 아니었으니까.


"귀찮게 좀 하지 말아요. 미쳤어요?"

라고 자연스럽게 어깨에 감긴 팔을 떼어내며 정색하면


"아니~ 자 17개 남았다."

이런 식이다. 아 진짜 뻔뻔해가지고.


아무래도 날 놀려먹는 것에 제대로 맛 들였는지, 그는 합숙 내내 기회만 되면 내 옆으로 붙어와 추근덕대기 시작했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장난은 무시해버리면 그만인데,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달라붙어 찔러대는 통에 반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심지어 내가 질문 비슷한 형식을 띤 말만 하도록 유도하는 느낌. "이런 게 재미있어요?" "아 쫌! 미쳤어. 하지 마요. 변태예요?" "츳키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이런 말에 "응." "아니?" "응~"으로 대답하며 하나씩 깎아내려 가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누가 도발이 특기인 사람 아니랄까 봐. 물음표가 뒤에 박히는 듯한 문장만 입에서 나갔다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 카운트를 센다. 보통 이런 거 문자로 적힌 거 아니면 그냥 넘어가게 되지 않나.


단순히 말로만 하는 도발이었다면 나도 이 지경으로 끌려다니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짜증이야 났겠지만, 무시로 일관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갔을 테니까. 문제는 말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같이 찔러온다는 것이다. 원래도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오던 사람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올리고 허리를 쿡 찌르는 식으로 나오면 나도 반응하지 않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아무 의미도 없이 허비한 질문만 10개. 무의미한 질문 속에서 (질문도 아니었지만) 얻어낸 정보는 당연하게도 없다. 계속해서 놀림을 받는 것에 괜히 빈정이 상해 아예 대꾸를 안 해보기도 해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위를 빙빙 맴도는 탓에 금방 무너지고 만다. 게다가 그의 도발은 수준급이니까.


"뭐 이 기회에 알아가자구. 꼭 연애 쪽이 아니어도 질문이면 다 받아줄 테니까. 아. 물론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것만."


이 끈질긴 실랑이 덕분에 어느새 저녁 식사 후 정기 일과가 되어버린 그와의 밤 산책. 너무 끈질긴 것 아니냐며 그에게 한참을 투덜댔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저것. 알아가긴 뭘 알아가자는 건지, 이미 그쪽은 절 다 파악하고 있다는 식이던데요. 그렇게 툭 쏘아붙이니 글쎄~? 하고,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큰맘 먹고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궁금했던 것. 당연히 당신 연애사업이지. 멍청아.


"저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

"어... 어?"

"그 사람 말이에요. 스무고개 하고 있잖아요."

"아. 응. 잘 알지."

"뭘 그렇게 놀라요?"

"진짜 물어볼 줄 몰랐거든."


물어보라면서. 지금 그것 때문에 이 바보 같은 짓이나 하고 있는 거잖아. 아마 날 놀리는 와중에 본인도 이 바보 같은 스무고개의 목적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당황한듯한 표정이 웃겨. 물어보라며.


"잘 아는 사람이라... 그럼 이제 몇 개 남았지."

"8개."

"9개잖아요. 왜 또 하나를 줄여."

"8개야. 뭘 그렇게 놀라냐면서. 이건 내가 대답도 다르게 했으니까 원래라면 질문 2개 감인데 봐준 거야."

"퍽이나... 그러시던가요."

"슬슬 관심이 생겼나 봐?"

"별로. 그렇게나 끈질기게 구시는데 질문 하나 제대로 안 써보고 허비하는 것도 아깝겠다 싶어서요."

"흐응... 그것뿐?"

"네. 그것뿐. 대답이나 제대로 해줘요. 거짓말할 생각 하지 말고."

"예 예. 그럼요. 거짓말하면 의미 없잖아. 자. 그럼 다음 질문?"

"음… "


잘 아는 사람. 누굴까. 사실 나와 그의 인연은 합숙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니, 내가 잘 아는 그의 인맥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네코마 배구부원, 그리고 합숙에서 만난 사람들, 카라스노 배구부 정도. 사실 이렇게만 해도 꽤 많은 사람이지만, 내가 잘 안다고 할만한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네코마 배구부 정도면 잘 안다고 할만 하려나. 그중에 여자부원만 꼽아본다면 후보가 확 줄어들게 된다. 어쨌건 남자 배구부. 이 안에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상대가 여자라면 매니저 정도밖에 없으니까. 심지어 네코마는 여자 매니저도 없고... 그러나 이렇게나 후보가 적다면 그가 굳이 스무고개니 어쩌니 하며 귀찮게 굴 것 같지는 않았다.


"상대는 여자?"

"아니."

"오…"

"왜?"

"아니.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잖아요."

"솔직하게 말해준다고 했잖아. 사실 나 남자건 여자건 별 상관없거든."

"제가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는 소리였는데."

"츳키 그런 거 걸고넘어질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아니면 내가 사람 잘 못 본 거고. 7개 남았어."

"뭐… 그건 그렇지만."


남자라 이거지.

슬슬 진심으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누굴까. 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어쨌든 몇 번 보기도 하고, 말 한 번씩은 터봤으니. 네코마에서는 야쿠씨와 코즈메씨정도. 하이바도 생각해봤지만 어째 하이바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짝사랑의 설렘과 달달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니. 그게 오히려 이 사람 방식인가. 다른 학교는 어떨까. 가장 유력한 건 보쿠토씨와 아카아시씨. 일단 내가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다른 학교 주장들도 손에 꼽아보았다. 카라스노에서는… 다이치선배? 친해 보였으니까. 스가 선배도 부주장이어서 그런지 은근히 자주 쿠로오씨와 마주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히나타… 와. 히나타한테 지면 그건 진짜 짜증 날 것 같은데.


적당히 이 사람 저 사람을 꼽아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고 보니 나 이 사람 취향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음… 쿠로오씨랑 동갑?"

"아닙니다. 6개."


그럼 일단 야쿠씨, 다이치 선배, 스가 선배는 제외. 누굴까.


"차분한 편이에요?"

"네. 매우."

"에."

"왜?"

"아니. 후보가 확 줄어들어서요."

"질문 다섯 개 남았나. 못 맞출 것 같은데."

"후보가 질문보다 적은데요."

"백프로 헛다리 짚고 있을 것 같아서."

"누굴 바보로 알아요?"

"네. 자, 네 개 남았다."

"와 진짜… 이건 사기야."


차분한 사람. 머리에 스치는 것은 코즈메 켄마. 아카아시 케이지. 그중에서도 유력한 사람은 아카아시씨인가. 둘 중에 내가 잘 안다고 할만한 사람은 그 사람뿐이니까. 아카아시씨면 솔직히 이길 재간이 없다. 나보다 더 오래 그와 아는 사이였고, 차분하고, 배구도 잘하고, 멋지기도 하고, 어른스럽고.


나도 모르게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런 거 왜 하자고 했어.


아카아시씨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둘. 서로 툭툭 치는 스킨쉽 정도야 스킨쉽 취급도 못 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 그 속에서 웃는. 쿠로오.


"표정 봐."

"뭐요."

"츳키 좋아하는 사람 있지?"

"... 에?"

"그런 표정이야.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찾으라고 했는데, 그 사람 생각하고 있어?"

"아니에요. 그런거."

"맞는 것 같은데. 난 알 것 같거든."

"뭘…"

"츳키가 좋아하는 사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이.


그의 눈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숙이자 천천히 다가온다. 어느새 너무 가까워졌다. 고개를 숙여도 그의 몸이 보일 정도로. 밀착했다.


"츳키. 중요한 사람 한 명 빼놓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저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말 안 해도 알 것 같으니까. 다 보여."

"… 일단 좀 떨어져 봐요."

"싫어. 벌써 마지막 날 밤이고. 기다려주다가 내 인내심이 먼저 동했다고."

"그럼…"

"그 사람 아니야 츳키."

"저 아직 아무 말도…"

"그 사람. 아니야."


진지하고 어딘가 애타는 듯한 그 말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진지하고 조금 물기 어린, 처음 보는 그의 표정이 나를 보고 있다. 그가 천천히 나의 입술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좀 놀려줄 겸, 떠볼 겸 해본 건데 피하기만 하고. 생각보다 너무 지체됐잖아.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가. 나를 보면서.


"츳키."

"…"

"이제 알았잖아."

"…."

"질문 세 개 남았던가. 하나로도 충분하지 이제? 나머지 두 개는 나 줘."


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할까. 그가 입술을 부드럽게 누른다. 아까부터 심장이 쿵쿵.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입술 끝이 간지러워 달싹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눈만 굴려본다.



알고 있다. 사실 이제 알 것 같다. 모르는 게 바보지. 지금 이 사람은 대놓고 날 떠보고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그가 이내 이마를 맞대고 하- 하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숨결이 들어오는 것 같아, 입술을 그대로 닫고 싶었는데, 닫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나의 입술을 쓰다듬었기 때문에.


"다음 질문, 할 차례야."


속삭이는 그의 말이 마치 주문처럼 들려왔다. 쿵쾅거리는 심장에 이성도 마비되었는지, 입이 저절로 벌어져 그의 귓가에 17번째 질문을 속삭인다.


"그 사람."

"응."

"저에요?"

"응. 너야. 츠키시마."


고개를 푹 숙였다. 으아. 뭐라는 거야. 지금 뭐라는 거야.


"츳키. 나머지 두 개. 내가 쓸게."

"…"

"날 좋아해 츳키?"

"읏…"

"대답 못 하겠으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뛰는 심장과 타오르는 듯한 열기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해버려서,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다. 그가 혀를 내어 살짝 입맛을 다시며, 입술에 있던 손을 천천히 귀로 옮겨간다. 귀를 간질이는 손. 아주 작은 그 움직임에도 온몸에 전기가 튀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떨었다. 아-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 섞인 소리.


"대답이 '아니오'면, 그대로 날 밀어내."

"…"

"'응'이면 입 벌려."


그 말에, 더 굳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나 밀어낼 수도 없다.


"모르겠으면, 눈 감아."


떨리는 시선을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눈동자에서 그대로 전해지는 타오르는 열기에, 버틸 수가 없어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다. 그리고 떨리는 눈꺼풀을 내려 눈동자를 덮어버렸다. 그가 살짝 웃는 소리가 났다.


"그럼 마지막."

"…"

"나랑 사귈래?"


놀라서 입을 벌리고 바라볼 뻔 했다.


"대답이 부정이거나 싫으면, 밀어내라고 했어. 이제. 키스할 거야."


그의 손이 나의 고개를 들어 올린다. 눈을 뜰 수가 없다. 조금 뜨거워진 그와 나의 숨결이 어느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섞여 들어간다.


그리고 닿아오는 그의 입술.


떨리는 그 촉감에, 나도 모르게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갈라진 틈 사이로 파고드는 그에게 온전히 휘말려, 그대로 팔을 들어 그를 끌어안아 버렸다. 밀어낼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이 사람과 있으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의 흐름에 말려들고 만다. 진짜 싫어.


몸을 조금 더 가까이 그에게 붙이고 끌려다니는 혀를 움직여 보았다. 조금이라도 흐름을 빼앗아 오려고.

귓가엔 작게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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