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가만히 있어도 목 뒤로 땀이 흐르는 찜통 더위. 선풍기를 강하게 틀어봤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한참 역부족이었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운 것은 이미 한참 전이었지만, 한 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고 깨버리고 말았다.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 탓이다. 아니,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놔도 가시지 않는 더위 탓이 더 크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정이 넘어가도록 돌아오지 않은 룸메이트 탓일지도 모르겠다. 침대 옆 협탁에 올려져 있는 시계바늘은 이미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연락에 먼저 잠에 들려고 노력했으나 역시 그 노력은 한밤중에 우는 매미 소리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 이전에 잠을 자긴 자야 할텐데. 이런 저런 생각과 사라지지 않는 더위에 몸을 뒤척이는 사이, 이미 잠은 완전히 깨어버리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물이라도 들이키고 기다려봐야겠다. 토키토는 헐렁한 티셔츠를 연신 펄럭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어?"

"…아. 좋은 아침. 아니, 좋은 밤."

"뭐야, 언제 들어온건데?"

"방금? 아, 맥주 한 캔 할래?"

"들어왔으면 기색이라도 해야할 것 아냐. 됐어. 물이나 마실래."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아 걱정한 것도 무색하게, 룸메이트는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내 팔자좋게 들이키고 있었다. 그 사이 씻는 것도 마쳤는지 살짝 젖은 머리에 목에는 수건까지 두르고 있다. 영락없는 찜질방 아저씨 비쥬얼. 토키토는 태평하게 생수병을 건내며 식탁에 앉는 그의 모습에 그저 기가 찼다. 조금은 토라진 얼굴로 생수병을 받아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각보다 목이 말랐던 모양인지, 목울대가 조금은 거칠게 움직였다. 생수병의 거의 반을 비워내고 입을 닦아냈을 때에야, 건너편에 앉은 쿠보타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야. 뭔데?"

"뭐… 그냥.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뭐해?"

"너무 더워서 잘 수가 없어. 아니, 게다가 온다는 놈은 저녁때 연락한 이후로 연락도 없이 안들어오는데 잠이 올 턱이 있나. 뭐 하느라 늦은건데?"

"생각보다 일이 오래 걸려서.. 막차도 끊겼고? 돌아오는 시간 좀 걸렸어."

 



아 그러셔? 그럼 연락을 해야지. 핸드폰은 폼으로 들고 다니냐.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답하려고 했지만 본의와는 다르게 입에선 투정부리는 듯한 목소리가 멋대로 뱉어져 나왔다. 민망함에 입을 꾹 다물고 생수병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피식 웃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지금 비웃은거지? 비웃은거 맞지? 울컥한 마음에 휙 돌아보니 손등으로 입을 슬쩍 가린 채 웃는 쿠보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왜 웃고 난리야?!"

"아아. 아니. 토키토는 역시 혼자서는 못 자는구나.. 싶어서."

"됐거든? 더워서 못잔거야! 같이 있으면 더워서 더 못자!"

 



아아 그렇군. 미안 미안. 쿠보타는 양 손을 쫙 펴며 항복선언을 했지만 묘하게 떠보는 듯한 그 눈빛이 신경을 더 자극할 뿐이었다. 게다가 의자는 뒤로 까딱까딱 거만하게 앉는 그 태도는 뭐냐. 제대로 빈정이 상했지만 어째 강하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잠자리가 바뀌어도, 밖에서 천둥번개가 쳐도, 심지어 폭염 특보가 발령됐던 지난 주말에도 푹 잤을 정도로 잠자리에는 둔한 편이지만, 유독 잠들 수 없는 경우가 딱 하나 있었다. 항상 붙어다니는 그의 룸메이트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 쿠보타 역시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외박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일때문에 귀가가 늦어지는 것을 잠이 안온다는 이유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쿠보타가 늦거나 말거나 잠에 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사람이 없는 텅 빈 집의 휑한 공기는 기분을 불안하게 흔들어 놓았고, 결국 늦은 시간 귀가한 그에게 투덜대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었다. 제 꼴이 우습기도 하고, 심지어 쿠보타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 빈정이 상한다. 엄마 옆 아니면 잠 못드는 애도 아니고. 토키토는 괜히 생수통 입구를 만지작거렸다. 어느새 완전히 비어버린 플라스틱 병은 작은 압력에도 쉽게 찌그러져 소리를 냈다. 쿠보타 역시 으지직 소리를 내며 맥주캔을 찌그러트리고는 분리수거 통에 던져넣었다.

 




"..슬슬 자야지. 괜히 이 시간까지 못자게 했네."

"아아- 완전히 깨버렸어. 이제 자긴 글렀어. 큰일이다.. 아니. 그리고 애초에 쿠보쨩때문에 못잔게 아니라니까?"

 


네네- 건성으로 대답하는 쿠보타가 어느새 토키토의 앞까지 다가와 손을 뻗는다. 토키토의 입술을 꼬집는다.

 


"으븝! 므..므?"

"입. 대빨 나와있어."

 


쿠보타는 꼬집은 입술을 튕기듯 놓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토키토의 입술을 톡 쳤다. 입 집어넣어. 나도 마침 잠들긴 글른 것 같으니까 같이 시간이나 떼우지 뭐. 아이를 달래듯 한없이 다정한 말투에 빈정이 상해야 되는데도, 어쩐지 기분이 한결 풀어지는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늘 쿠보쨩 페이스에 말리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는 내가 없이도 편히 잠들 수 있던가? 문득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그러고보면 함께 살게 된 이래로 토키토가 그의 곁을 비운 일은 손에 꼽는 일이었다. 내가 없을 때 쿠보쨩은 어쩌고 있더라?

 



"그러고 보니까 묘하게 분한데…"

"..뭐가?"

"이거 어째 맨날 나만 기다리는 것 같잖아. 언젠가는 내가 쿠보쨩도 밤새 잠못들게 해줘야지."

 


괜히 앞에 서있는 쿠보타의 배를 툭 건드리며 퉁명스럽게 말을 꺼낸다. 셔츠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단단하게 자리잡은 근육이 묘하게 촉감이 좋아 슬쩍 손가락으로 건드려본다. 부럽다 이자식. 먹는 건 똑같은데 근육량은 더 우위인 것 같다. 운동을 더 해야하나? 이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중에, 잠시 아무 말이 없던 그의 입에서 '그건 좀 위험한데.'따위의 말이 중얼거리듯 흘러나온다. 뭐라는거야 저거.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했던 그가 몸을 기울이며 토키토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댄다. 약하게 흘러나오는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혀 몸이 저절로 움츠러 들었다.

 


"..뭐,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뭔 소리야?"

 


"밤새 잠못들게 하는 방법에 별거 있겠어?"

"엉?"

"신체 건장한 남자가."

"...?"

"밤 늦게 말이야."

"..-무슨 헛소리야 이게!"

 



느닷없는 말에 얼굴이 훅 달아올라 쿠보타의 배를 세차게 때리고 말았다. 꽤 아팠는지 배를 감싸쥐고 고개를 푹 숙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아주 잠깐 들긴 했지만, 저따위 민망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뱉는 놈은 한대 맞아도 싸다.

 



"아야야.. 그렇다고 때릴 것 까지는 없잖아."

"뭔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이상한 소리… 별 소리 한거 없는데."

"했잖아 방금!"

"아니 뭐. 남자 둘이 밤늦게 하는 일이 한두개도 아니고."

"…"

"왜?"

"뭐."

"뭘 떠올렸는데?"

"...알거 없어 너는!!"

"원한다면 생각한 그대로 해줄 수도 있는데."

"됐다고!! 잘꺼야!!"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젠 정말로 잠이고 뭐고 정신이 확 들어버렸지만, 오기로라도 자고야 말겠다. 씩씩대는 자신의 모습이 웃겼는지, 쿠보타는 제대로 숨도 못쉬고 큭큭 웃어대기 시작했다. 저걸 그냥..

 


"아아. 미안미안. 그런데, 잠 못자겠다면서?"

"어떻게든 잘꺼야!"

"잠 잘 들게 해줄까?"

"...어떻게?"

 





그를 빤히 바라보자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을 굳히고 다가온다. 사뭇 진지한 표정에 등골이 오싹해져 몸을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엄지와 검지로 토키토의 턱을 들어올렸다.

 



"굿나잇 키스."

"..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두 입술이 겹쳤다. 아, 나 방금 완전 바보같은 표정이었을텐데. 눈도 못감고. 그러나 쓸데없는 생각은 입술을 비집어 열며 밀려들어오는 그의 혀에 새하얗게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새 부엌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 그리고 두 입술 사이에서 드문드문 나오는 물기 가득한 소리만이 가득 찼다. 연신 각도를 바꿔가며 밀려오는 통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버티지 못하고 쿠보타의 팔에 붙잡자 그제야 입술이 떨어졌다. 허억. 거친 숨소리가 미쳐 붙잡기도 전에 입에서 터져 나온다. 숨을 고르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얼굴에서 좀처럼 벗어날 줄 모르는 그의 시선에 다시금 얼굴에 열기가 오른다.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다.

 





"….그…"

"…응?"

"보통은 말이야."

"응."

"키스.. 하면 보통 깨지 않냐."

"…?"

"그 뭐… 책같은 곳에서 보면 말이야."

"...아아… 공주님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보통 굿나잇 키스는 이런거 아니지 않나? 얼굴을 붉히며 항의해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토키토의 허리에 팔을 휘감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 또 페이스에 휘말리고 말았다.

 



"잠 오겠어?"

"올리가 있냐?"

"아아… 어쩌지. 그럼 역시 신체 건강한 남자가 밤을 지새우는 그 레퍼토리로 가는건가."

"안가!"

 


알았어 알았어. 일단 누워야 잠을 자던 뭘 하던 하지. 쿠보타는 얼굴이 붉어질대로 붉어진 토키토를 어깨에 들쳐엎고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내려놓으라고 항의를 해야하는데, 이미 온 몸의 힘이 풀어진 터라 항의할 기력도 없다. 분함에 치를 떠는 사이 침실에 도착했고. 쿠보타는 조금은 거칠게 침대 위에 토키토를 내려놓았다.

 



"자자. 네시 넘었어."

"말 안해도 잘꺼야."

 


네네. 그러세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불을 끄러 가는 저 놈의 등이 괜히 얄밉다. 한없이 노려보았지만 부질없을 따름이다. 토키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누웠다. 잠시 후 침대가 삐걱- 소리를 내며 쿠보타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저기. 이불, 그러고 자면 더울텐데."

"시끄러."

"뭐.. 상관은 없지만. 나 배 덮을 정도는 줘야지."

"알아서 자!"

 


피식 웃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린다. 잠시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웅크린 제 몸을 끌어안는 감촉이 느껴졌다.

 


"...더워."

"알아."

"비키란 소리야."

"응. 알아."

 

 

 

언제쯤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후 쿠보타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토키토는 당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는지, 창 밖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2015년 8월 8일 이글루스에서 작성

미네쿠라 전력60분_주제: 열대야
작성시간: 1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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