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분주하게, 하루 중 가장 빠르게 움직이며 맞이하는 시간. 아침. 해가 뜨고 순식간에 밝아진 세상 속으로 새 지저귀는 소리, 버스의 낡은 기어 소리, 오가는 사람들의 옷깃 스치는 소리가 빠르게 스미는 그런 때.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그런 시간.



그러나 나의 아침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조금 느리게, 굼뜨게 시작하곤 한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고, 두어 차례 눈을 부비고, 멍하니 앉아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시야에 담긴 안경을 찾아 손을 움직인다. 안경을 쓰면 또렷하게 다시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눈을 두어 차례 꿈벅. 꿈벅.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다시 일으켜 침대 앞에 서고. 느리게. 걸어가 욕실에 몸을 밀어 넣는다.


평소 몸 움직임이 느리거나 굼뜬 편은 아니지만, 유독 느릿한 아침의 내 모습에 언젠가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느릿느릿 여태 떠 있는 하얀 달 같구나. 케이.


달은 아침에 시작하는 애가 아니라 끝내러 가는 애잖아. 느리게 굴러가는 머리로 그렇게 투덜댔던 것 같다.

그런 아침. 그런 느린 시작. 해가 떴지만, 아직 온도가 오르지 않아 냉한 그런 새벽녘의 공기 같은. 느릿함.




아침 시작이 그렇듯이 나는 무엇에든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늦게 타오르곤 했다. 타오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느리게. 장작불에 불을 붙이려고 작은 불씨 하나를 수차례 태우고 또 태워야 하는 뭐 그런 것처럼. 덕분에 종종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욕이 없다던가, 승리욕이 없다던가, 욕심이 없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지는 건 싫어하는데. 그것도 엄청. 그러나 내 승리욕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늦게 발현되는 듯했다. 그래서 모르나 보지. 뭐. 크게 신경 쓰진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말이야. 가끔은 사람의 온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있다. 화르륵 타오르며 의욕을 불태우는 사람 옆은 솔직히 힘들어. 불씨가 장작으로 옮겨붙기도 전에 불쏘시개를 홀랑 태워버리는 그런 꼴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의욕만 충만한 사람들이 아니꼽게 보이기 시작했다. 히나타나 카게야마가 그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좋아한다든가, 사랑한다든가 하는 그런 낯간지러운 감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그런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도 없거니와, 나의 이 느리고 굼뜨게 오르는 내면의 온도를 생각해보자면 퍽이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감정인 것이다. 내가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할 때면 상대방은 살리려고 해도 도무지 불씨를 살릴 수 없는, 이미 꺼지기 시작한 등불처럼, 그렇게 식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거라면, 그런 감정 모르는 것이 좋았다. 좋을 것 같다.

 



구구절절 길게 말했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그게 뭔지.

나는 이렇게, 내 감정을 파악하는 것에는 다른 것보다도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구구절절 길고 느리게 서론을 늘어놓는 것은 결국, 한 가지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바로 당신에 대한.



뜨거운 햇살 속에서, 마찬가지로 뜨거운 남고생들이 뜨겁게 뛰고 연습했던 여름 합숙. 그곳에서 당신을 만났다. 눈에 띄지 않으려 개인 연습도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빠져나오던 나를 용케도 발견해 데려가던 당신을.




귀찮고 오지랖만 넓은 사람. 솔직히 말하면 당신에 대한 첫인상은 이랬다. 당신의 후배도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텐데, 당신은 내가 조금만 멍하니 있으면 어김없이 틈을 파고들어 내게 말을 걸었다. 많이 힘들어? 안색이 안 좋아. 오늘은 블로킹이 좋네. 조금 더 손끝에 힘을 줘. 오늘은 너희도 한 번은 이겨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얄밉게 놀리면서도 나의 표정 하나하나를 관찰해가며, 컨디션 하나하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당신 후배들이나 챙기라며 밀어내면, 그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데다 문제아들은 전담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며 더 가까이 붙어왔다. 어깨를 주물러주고, 이리저리 얼굴을 살펴가면서. 당신과의 거리감을 미처 잴 틈도 없이 파고드는 통에,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당황해서였다. 분명.


선배들은 그런 너에게, 나를 챙겨주어 고맙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짓궂게 웃으며. 당신이 나에게 오면 그들은 어째선지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 나에게 오는 당신의 얼굴이 아주 조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 붉었던 것 같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해 이리저리 눈을 피하느라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합숙이 하루하루 거듭될수록. 당신이 나에게 오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졌고, 당신은 조금 더 스스럼없이 이것저것을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으며, 조금 더 스스럼없이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대답을 어떻게 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신의 얼굴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당신의 눈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날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훅 끼쳐오는 당신의 체향에 머리가 아득해져서, 숨을 참느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요. 별로. 상관없잖아요. 같은, 무심한 단어들만 자꾸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당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반짝반짝 빛이 나서, 사실은 밤이 되면 그 이야기를 한참 곱씹어보곤 했다. 그러면 그 이야기 속에서 당신이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지, 당신이 어떻게 웃었을지, 당신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웃음이 났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당신의 모습은 언제나 빛이 났다. 동경했다. 모두가 하나둘 잠에 빠져드는 그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그 감정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동경. 설레고, 벅차고, 그러나 어쩐지 모자란 그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만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당신의 질문에 내가 쏟아낸 그 서툰 답들은 아마, 내 마음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훅 치고 들어오는 당신의 질문에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놀라 답하느라, 나도 모르게 그 무심한 단어들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당신의 질문에 무관심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당신의 말에 사실은 어떻게 대답하고 싶었는지를 곱씹고, 또 곱씹는다.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당신이 해주는 것처럼. 아마 나는 지루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겠지. 아주 느리게.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말을 고르고 골랐지만, 가까스로 찾은 단어는 이미 대답하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다시 입 안으로 삼켜야 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나의 이 느린 대답을.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에서, 막연하게 그런 것들을 기대했었다.

이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 앞에선 더 서툴고, 더 느리고,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당신이 건넨 단 한 가지의 말에 대답하기 위함이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던진, 그 말에 대해서. 그래. 함께 풀벌레가 우는 그 밤길을 거닐 때 나에게 건넨. 그 말.


"좋아해, 츠키시마."


나의 손을 잡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던 그 말.


너무 놀라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지 단 한 개도 생각나지 않았다.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았다. "너무 갑작스러웠나?" 머쓱하게 말하는 당신에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니. 제가… 그런 게 아니고…"하고 의미도 모를 바보 같은 말만 중얼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신의 웃음, 그 씁쓸한 웃음이 너무 가슴 아팠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역시 무리?"

"아뇨! 그게, 그게 아니라!"


떨어지려는 당신의 손을 다급히 붙잡았다.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급히 당신을 붙잡을 단어를 쏟아냈다. 그리고 가까스로 말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애타는 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당신의 손을 세게 붙들었다.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무리라거나 그런 게.

사실 난. 이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잘 모를 뿐이에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당신에 대한 마음이 하나씩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하늘 가득 수놓은 별만큼이나 쌓여버렸다. 그중에 어느 것이 나의 진짜 마음인지, 어느 것이 당신에 대한 답이 될지 골라내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미처 이름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그렇게 쌓여만 갔다. 새로운 별을 찾아 이름 붙이는 천문학자처럼, 나는 나의 감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분명,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과 뜨겁게 달아오르는 얼굴의 이유가 될 감정도 있을 거야.

작게 반짝이는 그 감정도, 사실은 당신의 것처럼 뜨거울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어요.



당신의 마음은 아직, 내가 다가가기엔 너무 뜨겁고 빠르다.

사실은 내 마음이 뒤늦게 타오르기 전에 당신의 마음이 식어버릴까 그것이 두려워서.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보기로 한다.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은 온도가 될 때까지.



그땐 나의 작은 마음 하나하나에도 이름이 붙어있겠죠. 당신에게 들려줄 수 있을 정도로.

그때까지 당신은 기다려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마주 잡은 당신의 손과 아직 열기로 가득한 그 두 눈이, 기다리겠노라 말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을

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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