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츳키른 온라인 온리전 [우월주의]에 

뎁셔님, 카프님, 코라손님과 함께 합동지<기억을 걷는 시간> 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참여 원고: <침잠 (沈潛)> _ 회사원 아카아시와 츠키시마의 이야기


본 합동지는 소설 회지입니다! 




* 본 회지는 성인본입니다. 

* 샘플은 전연령이지만, 제가 참가하는 원고 역시 성인물입니다. 

* 커플링: 아카아시X츠키시마

 


* 합동지 홈페이지: https://182x190.wixsite.com/rememberance









침잠 (沈潛)







그와의 인연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과 같다. 빠져나오려 할수록 발을 옭아매는 깊은 늪.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품고 있는 나의 연심, 욕망, 또는 그것보다 추잡하고 더러운 어떤 것. 그러한 감정들을 늪에 비유하는 것이 더 맞겠다. 날로 커져가는 질척한 감정을 애써 가슴 깊은 곳에 찍어 눌러 삼키며 그의 곁에 머물기를 소망했으나, 욕망에 뒤얽힌 몸은 여전히 그 늪에 잠긴 채 나를 좀먹어 들어갔다.


서로의 마음이 동했던 찰나의 그 시절.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깊은 늪에서 아카아시는 그저 가만히, 더 깊은 심연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그저 더 이상의 감정을 키우지 않은 채 가만히 있기를 택했다. 언제나 정중하고 예의바른 몸짓으로, 애정을 주면서도 더 이상의 애정을 주지는 않은 채. 언제나 좋은 선배. 그 포지션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럼 언젠가 그 심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러나 애써 그렇게 초연하게 거리를 둔 채 눈을 감고 감정을 부정하려 들수록, 마치 그에 대한 반동인 듯 츠키시마는 스스로 손을 뻗어오기 시작한다. 좀처럼 다가올 줄 모르던 그가 오히려 자신을 직시하고 손을 뻗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아카아시는 눈을 뜨고 자신의 발밑을 바라본다. 아. 이런. 언제 이렇게 빠져버렸는지. 어느새 욕망의 늪에 빠져버린 발은 보이지도 않고 무릎까지 깊게 잠겨버린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그제야 깨닫는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 눈을 감고 귀를 닫았던 그 행위가 결국엔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음을. 발버둥이었음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가는 이 늪에서 이 얼마나 바보 같고 부질없는 행위인가. 뻗어오는 그 손을 보며, 아카아시는 깨달았다. 아. 지금 저 손을 잡으면 끌어당겨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츠키시마가 될 것이다. 발을 옭아매는 욕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끌려 들어와 저 하얗고 깨끗한 몸을 잔뜩 더럽힐 것이다. 그리고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다 결국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겠지. 추잡하게 더러워진 그는 분명 자신을 더럽힌 아카아시를 원망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이기적이게도, 아카아시는 그의 눈에 자신이 두려움이나 혐오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했다. 그래서 완전히 등을 돌리기로 했다. 외면. 그것이 아카아시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 다행히도 대학 졸업 후 해외 유학의 기회가 찾아왔고, 이를 핑계로 츠키시마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다. 부러 그에게는 어디로 간다는 연락 하나 없이 떠났다. 해외로 나온 지 한 달쯤 지나서야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서 뒤늦게 나의 소식을 접한 것이리라. 화가 났을까? 섭섭했을까? 아니면 그저 뒤늦게 접한 선배의 소식에 인사차 안부를 물으려는 것이었을까? 몇 차례 연락이 왔으나, 전부 받지도,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귀국 후 당연하게도 그와의 연락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나 끈질기게 무시했으니 단단히 화가 났을 만도 하지. 쿠로오나 보쿠토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면 언제가는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물론 아카아시 쪽에서 먼저 그 만남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까지의 노골적인 회피가 무의미해질 것이므로.


문득, 아카아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2년이나 연락 한 번 없이,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는데도 머릿속 가득 츠키시마로 지배되어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끝내 그를 머릿속에서 떨궈내는 것에 실패했는가. 결국 외면하고자 했던 이 노력도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그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것에는 성공하지 않았나. 최소한 자신의 손으로 그를 더럽힐 일은 없을 것이다. 그에겐 아마, 친절했지만 매정한 선배로 기억에 남겠지.


아카아시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사람의 소개로 빠르게 취업이 결정됐다. 나름대로 월급이며 여러 가지 조건이 좋은 곳이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순조로운 사회생활. 잠시나마 그를 머리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한 회사 생활은 바빴고, 정신없었으며, 신경써야할 것도 많았으니, 그를 생각할 여유 따윈 생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를 바쁜 일상으로 몰아넣은 것일지도 몰랐다. 늪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다 결국 온몸이 깊은 늪 속에 잠겨버려, 오히려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늪 속에서 아카아시는 점점 질식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추악한 감정을 외면하고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그에게 내려온 형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행되었다.






* * *






창밖의 밝았던 건물들도 어느새 하나둘 불이 꺼질 무렵, 그제야 일이 마무리 되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츠키시마는 잠시 바람이나 쐬자며 자리에서 일어나 담뱃갑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 시작한 걸까, 담배. 이제 나와는 더 이상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를 따라 건물의 옥상에 올라갔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조용히 불을 붙이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고 건물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약간은 서늘한 바람이 머리칼을 흩뜨린다. 그리고 또다시 침묵. 건물 아래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은 오히려 우리 둘 사이의 적막을 일깨워준다. 그가 깊게 들이쉰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뿜어낸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무슨 말 좀 해봐요, 예의 없는 신입 사원씨.”

“... 별로 할 말은 없는데요.”

“퇴사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덕분에 나까지 며칠씩 야근하게 됐는데 그렇게 나올 거예요?”


토라진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곧 헤어질 상사에게 궁금한 거라도 없냐며 말을 건넨다. 이제까지 저에게 관심 하나 주지 않은 채 외면했던 나에게 이제와 작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와의 연은 오늘로 마지막이 될 터인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조금,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담배는 언제부터 피웠습니까?”

“이거요? 2년... 좀 넘었나. 누구씨 때문에 속을 썩는 바람에.”


2년. 헤어졌을 무렵인가.


“다행이네요. 곧 속 썩을 일도 없어질 거고.”

“당신 때문이라고는 안했는데요.”

“나도 나 때문이라고는 안했는데. 게다가 어쨌든 지금은 저도 원인 중 하나잖습니까. 예의 없다면서요.”


그의 말에 지지 않고 맞받아치니, 역시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를 입에 문다. 다시 한 번 매캐한 담배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적막. 우리 사이는 이렇게, 애써 대화 주제를 고심해 골라야 할 정도로 멀어졌다.


마음에 드는 거리감이다. 아마 열심히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사교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그에겐 어려운 일이다. 어쨌건 우리 사이엔 2년이 넘는 공백이 생겼고, 그 사이 우리는 너무 달라졌으며, 서로의 변화에 대해 아는 것 역시 아무것도 없으므로. 네가 담배를 피운단 사실을 이제야 안 나처럼. 너 역시 나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오히려 무엇을 먼저 물어봐야 할지 더욱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그보다는 능숙한 내 쪽에서 먼저 분위기를 풀어주고 다가가 주었겠지만, 지금 나에겐 그럴 용의가 전혀 없으니까.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말을 고르던 그가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거의 마무리 되었으니 더 이상 늦게까지 남지 않아도 되겠다는, 서로가 이미 알고 있는 시시콜콜한 내용이다. 아마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닐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나름의 준비운동이겠지. 상투적으로 그런 말을 서로 주고받다, 츠키시마가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 뱉어내며 잠시 뜸을 들인다. 공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묘하게 바뀐 분위기를 애써 무시해본다.


“아카아시씨.”

“네. 말씀하세요.”

“아뇨. 그거 말구요. 아카아시씨.”

“... 왜.”

“그만두는 이유가 뭐에요?”


그는 이렇게나 끈질기다. 밀어내고 떼어내도 다시 손을 뻗어온다. 누가 그에게 의욕이 없다 조롱했나. 아니면 넌 많은 시간이 흘러 조금 바뀐 걸까. 어느새 담배를 입에 물게 된 것처럼.


“말했잖아. 적성에 안 맞는다고.”

“표면적인 이유 말고요. 지금 사원 아카아시에게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요.”

“...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그런가요. 아쉽네요.”


조금 기대했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츠키시마가 어느새 짧아진 담배를 비벼 끄고 옥상 문을 나섰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처진 어깨에선 망설임이, 그리고 서운함이 엿보인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아무도 없어 고요한 사무실 층으로 우리를 내려준다. 적막한 복도를 걷다, 그는 마무리는 자신이 할 테니 먼저 들어가시라며 탕비실의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잠시 멍하니 복도의 벽에 기대어 섰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내가 얼마나 널 밀어내야 그 기대를 버릴 수 있나. 나는 네가 기대하는, 네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지겹게도 밀어내는 나를 보며 너는 아마 참으로 끈질기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널 밀어내면서도 차마 시선마저 거두지 못하고 망설였던 내 탓이 크다. 나의 애매한 태도가 너를 기대하고 착각하게 만들었겠지.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네 쪽에서 날 거부하고 피하게 만들면 될 일이다. 침잠하는 늪 속에서 고개를 든다. 단단하게 굳은 땅인 줄 알고 발을 딛으려는 너에게 진흙이 질척하게 묻은 손을 뻗는다면, 너는 이곳이 발을 들이면 위험한 늪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더럽혀진 발목을 다시 깨끗하게 씻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완전히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이상 참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나는 아주 한참 전부터 너의 깨끗한 몸을, 마음을 추잡함으로 잔뜩 더럽히고 싶었으니까. 벽에서 몸을 떼어 탕비실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머그잔에 물을 따라 마시던 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먼저 가시라니까. 뭐 드시게요?”

“아니.”

“그럼...”

“있잖아.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지.”

“... 네.”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뭐, 대강.”

“이유가 뭘 것 같아?”

“... 저 때문에요?”

“너?”

“네. 제가 불편하신가 해서요.”

“뭐, 비슷해.”


건조한 대답에, 네가 웃기 시작한다.


“그런 거라면 미안해요. 제가 공사 구분을 못했네요.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전 그냥...”


밝게 미소하며 말하는 츠키시마의 눈은 조금 상처받은 듯 작게 떨렸다. 아주 미묘한 변화였고, 그마저도 금방 밝은 웃음 속에 가려졌지만 그 표정이 나에게 보이지 않을 리 없다. 그것은 츠키시마를 처음 만났을 무렵, 쿠로오씨가 그의 약점을 본의 아니게 건드렸을 때의 표정과 같았기 때문에. 그렇구나. 넌 아직도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전히 나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중얼거려본다. 그게 아니야.


“그럼?”

“알고 싶어? 그럼 네가 날 불편해할걸.”


이제 나 역시 더 이상 숨길 생각은 없다. 이제껏 참은 것도 나로선 엄청나게 노력한 것이다. 나는 너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는데, 그걸 잡지 못하고 미련하게 계속 손을 뻗어온 것은 너다. 그렇다면 조금은 폭력적으로 알려줄 수밖에 없지. 그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그 걸음에 망설임은 없다. 그가 들고 있던 머그잔을 뺏어 옆에 내려놓고, 좀 더 바짝 다가간다. 나의 눈에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당황한 츠키시마가 뒷걸음을 치다 벽에 가로막혔다. 이제와 피한다 해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그의 허리를 붙잡아 쓸어 올리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몇 번이고 경고했는데, 듣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 가르쳐줄게. 내가 너한테 원하는 게 뭔지.”


그리고 그대로 츠키시마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옆에 놓인 싱크대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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