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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죄 합작) [쿠로츠키] Losing Control

2017년 11월 쿠로츠키 7대죄 합작 투고 : 주제_오만PRIDE


* 약 19,600자

* 자해, 유혈 묘사가 있습니다. 해당 요소에 민감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 약수위

뱀파이어 쿠로오 X 인간 츠키시마 썰 기반

* 7대죄 합작 투고 글 _ 주제: 오만(PRIDE)


전체 합작 페이지: http://kurotsuki-7sins.tistory.com/









“배고프지 않아요?”

“... 또 뭘 어쩌려고.”

“그냥 물어본 거예요. 예민하게 굴긴. 그런 것도 못 물어보나.”

“묻는 사람이 너니까 그렇잖아.”


쿠로오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식사 안부를 묻는 단순한 그 질문도 이 남자가 하는 것은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 단순한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쿠로오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자 눈매를 휘어가며 기분 좋게 웃는다. 그는 쿠로오의 반응을 즐기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불쾌한 그 표정을.


“대충 때웠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헤에. 뭐로요? 난 준 적 없는데. 수혈팩?”

“알면 자꾸 시비 걸지 마.”

“하하. 그거로는 성에 안 차면서. 먹고 싶지 않아요?”

“왜 이러냐, 진짜...”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렇게 불만이면 당신의 그 대단하신 입맛을 탓해요.”


쿠로오는 부러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그 태도가 기분 나쁘다. 좀 봐주지? 톡 쏘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와 박힌다. 그 말에 흘끔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젠장. 너 그만 좀...!”


안경 너머의 비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그는 제 입안에 오른손 엄지를 집어넣는다. 말리는 쿠로오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의 치아가 손가락의 여린 살을 짓씹는다. 미세한 피 냄새가 쿠로오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한다. 쿠로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코로 와 닿는 혈향이 지독하게 달다. 지겨운 놈.


“그런 맛없는 거 말고. 맛있는 거 먹어요. 먹고 싶잖아. 착하지?”


가까이 다가온 그가 손을 뻗어 쿠로오의 입술을 쓸었다. 피가 방울져 흘러내리는 그 손가락으로. 아이를 달래는 듯 약 올리는 그 목소리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거부할 수 없다. 쿠로오는 입을 벌려 그의 손가락을 천천히 핥았다. 감았던 눈을 뜬다. 그와 시선이 마주한다. 마주한 눈이 다시 초승달처럼 휘며 웃는다. 그의 미소는 지독하게도 달고 아름답다.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그의 붉은 핏방울처럼.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뭣 하러 반항을 해요.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그러쥔다. 위협적인 눈으로 쏘아보았지만, 그는 도리어 코웃음을 치며 제 손가락으로 쿠로오의 입천장을 쓸었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피 냄새에 머릿속이 아찔해져, 탁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 달콤하고 치욕스러운 유혹을 쿠로오는 감히 거부할 수 없었다. 그만두라는 애달픈 시선을 보낸다. 물론 그는 본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 삶의 가장 큰 유희를 그가 포기할 리 없다.


쿠로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성에 차지 않는 피 냄새를 맡아가며 그의 하얀 목을 바라보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한다. 어쩌다 이 빠져나갈 수도 없는 덫에 걸렸나.


쿠로오 앞에 선 남자는 입 꼬리를 당겨 행복한 듯 웃었다. 감히 인간 주제에 뱀파이어를 제멋대로 다루려는 오만한 남자. 츠키시마 케이는 천천히 쿠로오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렸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쿠로오의 입안에 제 혈향을 가득 흘려보내는 채로.




* * *



쿠로오는 소위 진조라고 불리는 순혈 뱀파이어다. 다른 흡혈귀들과 달리 이들은 크게 허기를 느끼지도, 마늘이나 말뚝 따위에 취약하지도 않았다. 햇빛에 쉽게 타들어 가는 여린 피부를 타고났지만, 이마저도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고유의 계급사회를 이루어 생활하는 뱀파이어에게 진조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존재. 이들은 먹이사슬의 가장 우위에 서서 모든 것을 관망하며 그저 자신의 명예와 품위를 위해서만 살았다. 쿠로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과 같은 우월함을 즐기며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고고한 자들. 


그런 쿠로오는 굳이 인간의 틈바구니에 섞여 그들의 사회 질서에 순응하며 살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호기심. 뱀파이어의 존재를 모른 채 저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 이룩해낸 사회에서의 삶이 궁금했다. 단지 그뿐. 진조라곤 해도 햇빛에는 금방 화상을 입을 정도로 피부가 약했지만, 대강 피부가 약하다는 핑계로 모자며 뭐며 이것 저것으로 가리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피 냄새를 맡는다 한들, 쿠로오에겐 그저 갓 구운 빵 냄새 정도의 자극밖에는 되지 않았으니 인간 틈에 섞여 산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군침이 돌기는 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닌. 딱 그 정도. 정 굶주리다 싶으면 적당히 사람을 골라 가까워진 뒤, 상대와 적당히 함께 밤을 보내다 잠들었을 때쯤 적당히 피를 빨아 마시면 그만이었다. 


츠키시마는 그렇게 고른 적당한 상대 중 한 명이었다. 하룻밤의 유흥을 위해 고른, 그저 외모가 취향이었을 뿐인 남자. 


둘은 같은 과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사람이 워낙 많은 학과였으니, 선후배라 할지라도 큰 교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 행사가 있거나 어쩌다 수업이 겹치면 만나 인사만 하는 정도. 쿠로오의 곁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츠키시마는 워낙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타입이었으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그들이 처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우연히 같은 교양수업을 들었을 때.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건넨 것은 쿠로오쪽이었다. 과 후배를 만난 선배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렇게 서로 말을 텄고, 수업에서 얼굴이 익숙한 사람은 둘뿐이었으니 앉는 자리가 가까워졌으며, 과제나 수업에 대한 정보를 들어야 했기에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2인조로 팀을 짜 수행해야 되는 과제가 있어, 자연스럽게 함께 팀을 짜 과제를 한 이후로는 연락의 빈도가 잦아졌다. 그뿐. 얼굴만 아는 사이에선 발전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하기엔 애매한 관계가 이어졌다. 


츠키시마에 대한 쿠로오의 첫인상은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것. 평균 신장을 훨씬 웃돌면서도 마른 몸 때문에 위압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하얀 몸과 고요한 분위기 덕분에 가냘픈 인상을 줬다. 날이 더워지고 옷차림이 얇아지며 드러난 하얗고 긴 목은 굳이 흡혈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탐냈을 법한 요염함을 풍겼다. 쿠로오가 그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하얀 목덜미에 한 번쯤 송곳니를 박아넣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을 때부터. 때마침 피가 고프기 시작했으므로, 이왕 마실 거라면 저 목에서 흐르는 것을 마시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쿠로오의 접근을 츠키시마 역시 거부하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다는 내색을 보이면서도, 쿠로오가 술 한잔하자며 연락을 해오면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나오곤 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아졌다. 수업과 과제는 만남을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다. 츠키시마의 팔이며 허벅지에 쿠로오의 손이 닿는 일이 많아졌다. 장소는 술집에서 쿠로오의 집으로 옮겨갔다. 애초에 쿠로오가 접근한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당연한 순서였다. 적당히 몸을 섞는 관계가 되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피를 조금 받아 마시기만 하면 그만이다. 진조에게 피란 그저 기호식품에 불과한 것이니, 그 정도 받아 마신다고 해서 몸에 무리가 가진 않을 것이다. 흡혈 후의 피곤도, 목에 난 잇자국도 정사 후의 후유증 덕분에 쉽게 가려질 터였다. 


"아."

"왜 그래?"

"아뇨. 손거스러미가 나서 뜯다가 피가..."


모든 것은 쿠로오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쿠로오의 집으로 들어가려는 바로 그 순간 그의 피 냄새를 맡기 전까진. 


손가락에 작게 일어난 살갗을 뜯으며 흐른 극소량의 혈액. 그곳에서 풍기는 미세한 혈향. 달았다. 지독하게. 제아무리 후각이 민감하다 한들 맡지 못했을 만큼 미세한 그 냄새는 쿠로오에게 분명하게 닿았다. 충동적으로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당황한 그의 얼굴.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그의 하얀 목덜미. 쿠로오는 미처 자신의 행동을 자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제 송곳니를 츠키시마의 목덜미에 박아넣었다. 베어 나오는 피를 남김없이 빨아 마셨다. 날카로운 이에 물려 피를 빨리는 그 고통에 츠키시마가 몸을 꺾어대며 숨을 들이켤 때까지. 


쿠로오의 식도를 타고 흘러가는 혈액은 그것이 풍기는 향만큼이나 달았다. 여지껏 먹어왔던 것과는 다르다. 쿠로오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 츠키시마의 몸이 짧게 경련하다 힘없이 축 처졌을 때야 쿠로오는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입을 떼어냈다. 선명한 잇자국 위로 피가 방울져 흘러내린다. 쿠로오는 정신을 놓은 츠키시마의 몸을 안아 들고 굳게 닫혀있던 현관을 열었다. 그대로 그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금세 말라붙은 핏방울을 사랑스럽다는 듯 혀로 핥으면서. 


집 앞엔 츠키시마가 가져왔던 수업 자료가 흩뿌려져 있었다. 몇 방울의 혈흔과 함께. 




* * *




“개처럼 기어 봐요. 그럼 조금은 맛보게 해줄 테니까.”


쿠로오는 제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하게 명령하는 츠키시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새하얀 나신 위로 역시나 새하얀 셔츠 하나만 입은 채 요염한 표정으로 쿠로오를 비웃듯 바라본다. 뱀파이어라는 고고한 종족이 다른 자의, 그것도 저보다 열등한 종족인 인간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치욕스러운 일. 쿠로오는 심지어 진조인 자신이 고작 피 때문에 인간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 자신의 처지에 그저 헛웃음이 나온다. 그것도 잠시. 무릎을 꿇은 채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쿠로오의 귀에 드르륵 하는, 커터칼 심을 빼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요. 아까 보니까 엄청 모자란 것 같던데.”

“... 알겠으니까. 칼 집어넣어.”

“명령하는 거예요? 지금 명령하고 있는 쪽은 그쪽이 아니라 나잖아.”

“다쳐. 다치니까... 아아, 젠장. 제발 그만...!”


쿠로오의 간절한 호소에도 츠키시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커터칼의 날카로운 날붙이를 제 손에 가져갔다. 간신히 피가 멎은 엄지손가락에 다시 깊은 생채기가 생긴다. 손가락, 손목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 동시에 퍼지는 달큼한 냄새에 머리가 아찔하다. 타들어 가듯 괴로운 갈증이 쿠로오의 식도를 덮쳐왔다. 이성의 끈을 붙들려 안간힘을 써봤자 본능을 자극하는 이 원초적 감각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오히려 억지로 억눌러 참았다간 츠키시마를 더 부추기는 꼴이 될 테고, 그 후 이성이 끊겨버린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지 몰랐다. 


쿠로오는 천천히 무릎을 끌어 츠키시마의 바로 앞까지 기었다. 절로 이가 갈린다. 개처럼 기는 행위가 치욕스럽다기보다도 이라도 악물지 않으면 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알고 있으니 이러는 거겠지. 그는 자신이 눈앞의 뱀파이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손으로 츠키시마의 발을 천천히 감싼다. 키가 유독 큰 그는 발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편이었다. 뼈가 도드라지는 하얀 발등에 떨리는 입술을 마주했다. 결국, 이렇게 순종적으로 움직이게 되니 이 오만한 남자의 믿음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고한 척 해봤자 인간보다 나을 것도 없네요."


츠키시마는 웃으며 제 팔에 다시 깊은 상처를 냈다. 더 굵은 핏줄기가 팔을 타고 흘러내린다. 빨갛게 적셔진 손으로 제 허벅지를 쓸어올린다. 쿠로오는 다시금 제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낀다. 붉은 손자국이 허벅지를 타고 하얀 셔츠 아래에 은밀하게 가려져 있는 그의 사타구니까지 이어진다. 쿠로오는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지독히도 달게 느껴지는 핏비린내. 눈앞을 가득 채우는 붉은 시야. 천천히 볼을 쓰다듬는 손길. 


"핥아요."


미각마저 지배하려는 달콤한 목소리. 쿠로오는 오감을 지배당한 채 츠키시마의 앞섬에 고개를 묻었다. 본능적 쾌락 앞에서 뱀파이어로서의 긍지는 아무런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러게. 진조니 뭐니, 인간보다 나을게 없긴 커녕 야생을 뛰어다니는 금수만도 못했다. 땅바닥에 쳐박힌 진조의 권위는 이제 쿠로오에겐 아무런 절망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 * *




그 날. 그러니까 쿠로오가 처음으로 츠키시마의 피를 들이마신 날, 츠키시마는 쿠로오의 침대 위에서 하얗게 벗은 나신으로 깨어났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현기증이 심했다. 떨리는 팔을 들어 가만히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정신을 차려본다. 몸을 일으켜 제 몸을 바라보니 몸만 벌거벗었을 뿐 정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잠시 눈을 깜박이며 기억을 더듬는 사이, 방문이 열리고 쿠로오가 들어왔다. 


"깼어?"

"네. 나 얼마나 오래 잤어요?"

"제대로 정신 든 거로 따지면 이틀."

"와... 꽤 기네."

"별로 놀라지도 않네. 너 무슨 일 있었는지는 알아?"

"당신이 내 피 빨아 마신 것까진 기억나는데. 이걸 모르겠네요."


츠키시마는 제 나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민망한 듯 눈을 피하는 쿠로오를 보며 킥킥 웃는다. 


"자는 사람 덮치는 취미 있어요?"

"... 네 몸 닦아내느라 그런 거잖아. 안건드렸어."

"헤에... 그건 신사적이네."

"... 안 놀라?"

"뭘요? 당신이 피 빨아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거?"


츠키시마는 제 무릎 위에 턱을 괴고 쿠로오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참 바보 같아. 댁들의 그 굶주린 눈빛을 인간이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무시하는 듯한 그 눈빛에 이번엔 쿠로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인간 주제에, 뭘 다 안다는 듯이 굴어?


"보통은 흡혈귀가 있다는 생각도 못 하지 않나?"

"보통은 그렇죠. 전 흡혈귀에게 물려서 죽은 사람을 알거든요."

"누구?"

"제 형이요."

"..."

"물리면 다 죽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그 정도는 조절할 줄 알아."

"조절? 사람을 이틀 동안 기절시켜놓고?"


웃기고 있네. 츠키시마는 소리내어 깔깔 웃어댔다. 노골적인 조롱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이 지경으로 자제력을 잃을 줄은 쿠로오 자신도 몰랐던 일이다. 조금만 더 주의력을 잃었다면 그의 생명까지 앗아갔을지도 모른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쿠로오였다. 츠키시마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핥아내면서도 다시 이를 박아 남김없이 빨아 마시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를 침대 위에 던져놓고 방을 빠져나와 한참 숨을 고른 뒤에야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다. 다시 자제력을 잃게 될까 두려워 그의 옷을 벗겨 세탁기에 던져넣고 정신을 잃은 몸을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냈다. 조금의 피 냄새도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흡혈귀 주제에 피에 큰 욕심이 없다면서도 내 피는 아니었단 소리에요?"


재미있네요. 쿠로오는 그 때 처음으로 츠키시마의 조소를 보았다. 이제껏 보아왔던 고요하고 권태로운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오만한 그 표정은 지독하게도 아름다워서, 쿠로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거 해보지 않을래요?"


츠키시마는 제 웃는 입술에 엄지를 가져가며 말했다. 당신의 자제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한 번 보고 싶다면서. 하얗게 벗은 다리를 벌린다. 그 외설적인 모습에 쿠로오가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뭐하자는 짓이지? 츠키시마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입에 넣은 엄지를 짓씹는다. 아차 하는 사이 다시금 미세한 혈향이 퍼졌다. 그것만으로도 쿠로오의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더 마시게 해줄게요. 말만 잘 듣는다면."




* * *




츠키시마의 피는 쿠로오에겐 마약과도 같다. 좀처럼 허기를 느낄 줄 모르던 쿠로오도 츠키시마의 혈향만큼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한 번 맡으면 성이 찰 때까지 들이켜야만 진정이 되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양이 많아지면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공급받는다면 자제력이 생길까 싶었지만, 츠키시마는 쿠로오가 지독한 갈증을 느낄 때까지 몰아세우다 그가 보는 앞에서 제 몸에 생채기를 내어 피를 흘리곤 했다. 달려들어 핏방울을 받아마시면 턱없이 모자란 그 향에 오히려 갈증이 심해졌다. 그러고 나면 다시 츠키시마의 명령이 시작된다. 조소와 함께. 말만 잘 들으면 더 마실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이를 갈면서도 그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나면 츠키시마는 제 목을 내어주곤 했다. 


"하아... 으음... 제대로 핥아요. 더 잘할 수 있잖아."


츠키시마는 자신이 쥔 통제권을 주로 제 쾌락 충족에 이용했다. 그는 자신의 피를 이용해서 쿠로오를 있는대로 험하게 다뤘다. 피 묻은 제 앞섬을 정신없이 핥아대는 쿠로오를 보며 츠키시마는 열에 달뜬 얼굴로 계속해서 그를 조롱했다. 한참을 신음하며 쾌락을 맛보다, 쿠로오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젖히며 떼어낸다. 그대로 쿠로오의 벌어진 입안으로 피가 말라붙은 손가락을 집어넣고 휘젓는다. 


"좋아? 더 먹고 싶어요? 그럼 똑바로 해. 빼지 말고. 응? 배도 고프고, 여기도 고프잖아. 그렇지?"


쿠로오의 반쯤 부푼 앞섬을 발로 콱콱 짓이기듯 누르며 속삭이는 목소리는 희열에 들떠있어 광기마저 비쳤다. 츠키시마의 허벅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손끝이 그의 허벅지를 짓눌렀다. 츠키시마의 손이 쿠로오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그대로 쿠로오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린다. 모독적인 행동에도 쿠로오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 손을 따라 츠키시마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며 츠키시마는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아주 즐겁다는 듯이. 


"말 잘 듣네. 그쪽이 그렇게 고고한 존재면 한 번 참아봐요. 핥지 말고."


하지 마. 쿠로오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과도 같은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마치 츠키시마의 귀에 닿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제 양손 끝을 세워 자신의 목을 뜯어내듯 죄 긁어놓았다. 붉은 손톱자국이 그의 하얀 목에 그림처럼 번졌다. 깊게 긁힌 생채기에선 옅게 피가 베어  나온다. 쿠로오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면 마치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러나 제 뺨을 강하게 후려치는 통증에 다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입가에서 웃음을 지운 츠키시마가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뭐해요? 똑바로 하라니까."


욕지기를 짓씹으며 쿠로오가 자세를 잡는다. 다시 츠키시마의 입에선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그의 달콤한 피보다도 더 중독적인 미소가. 




* * *




츠키시마는 자신의 피와 목숨을 미끼로 쿠로오를 길들이려 하고 있었다. 쿠로오가 원하는 것이 단순히 그의 피뿐이었다면 이 관계에서 츠키시마는 결코 우위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 자신은 그의 먹잇감에 불과하니까. 처음 츠키시마가 쿠로오에게 제안한 관계는 공생이었다. 


뱀파이어의 송곳니에는 최음 효과가 있어서 그들에게 흡혈 당할 때 겪는 쾌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세간에는 이런 소문이 떠돌았다.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츠키시마는 쿠로오에게 '재미있는 것'을 제안했다. 피는 얼마든지 줄 테니, 제 피를 빨아 마시면서 뒹굴어보라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츠키시마는 쾌락에 취해 정신을 놓고 허덕였고, 목덜미에서 이를 떼어낸 쿠로오가 그의 몸을 제압하고 생체기를 틀어막으며 지혈하고 나서야 간신히 그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후 그들은 서로의 쾌락을 위해 주기적으로 만나며 몸을 섞었다. 정사는 난잡했다. 피와 땀과 교성이 쉴 새 없이 뒤섞였다. 일말의 품위도, 애정도 없이 그저 본능적 쾌락만이 존재하는 그 정사를 쿠로오는 불쾌해했지만, 츠키시마는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쿠로오의 불쾌함까지도. 



쿠로오는 츠키시마와 함께 살을 맞대고 나서야 그가 지독한 권태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상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한 그는 삶에 큰 미련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유흥. 츠키시마의 입에서 진심 어린 웃음이 피어오르는 때는 쿠로오와 관계를 맺을 때뿐이었다. 쾌락에 달뜬 얼굴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아름답다. 츠키시마의 웃음에서 그것을 느꼈을 때야 비로소 쿠로오는 자각했다. 사랑에 빠졌다고. 쿠로오는 이제 피뿐만 아니라 츠키시마 그 자체를 원하게 되었다. 미련한 자신에게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진조라고 해봐야, 제 마음 하나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존재였을 뿐이다. 



* * *



츠키시마는 쿠로오 아래에서 아름답게도 울어댔다. 쿠로오는 어느새 그 모습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미쳤지. 개만도 못한 취급 받는 주제에. 백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봐야, 츠키시마의 위에서 허리를 쳐올릴때면 제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온전히 그에게 흠뻑 취해버리곤 했다. 쾌락에 떨던 츠키시마는 곧 쿠로오가 반했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속삭인다. 잘 참았으니, 상을 주겠다고. 곧 다리를 벌려 제 허벅지 안쪽을 톡톡 친다.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다. 그러나 쿠로오는 따를 수밖에 없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세워 여린 살에 박아넣었다. 


뱀파이어의 흡혈에는 최음 효과가 있어, 극도의 쾌락 덕분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츠키시마는 그 감각을 즐겼다. 허벅지의 살에서 피를 빨아내며 그의 성기를 쥐고 흔들고 있노라면 츠키시마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허리를 꺾고 곧 허연 액체를 뿜어내곤 했다. 그럴 때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음란한 교성이 쿠로오의 귀를 가득 메우는 통에, 빨아들이는 피의 양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그 교성은 쿠로오의 이성을 끊어놓기 충분했으니까. 츠키시마는 갑작스러운 빈혈로 어지러워질 때쯤, 쿠로오를 발로 걷어차며 떨어뜨려 놓았다. 


"제대로 조절해. 무식하게 빨아대지만 말고."


갑작스럽게 떨어져 나가 미처 마시지 못한 피가 쿠로오의 입가로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흐르는 피를 훑어 올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뱀파이어의 위협적인 눈빛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츠키시마는 자신의 위치를 가장 잘 아는 남자다. 


"하여간 너, 가진 건 피밖에 없는 주제에 건방져."

"하하. 그러는 당신은 그 피하나에 껌벅 죽잖아요. 위아래 구분은 해줬으면 좋겠네?"


걷어차인 볼을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짓씹듯 던진다. 쿠로오도 마냥 고분고분하게 당하고만은 있지 않았다. 그는 날이 갈수록 오만해지고 있었다. 언제건 물어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눈앞의 맹수 앞에서, 그는 이상하리만치 강한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맹수는 결코 자신을 물어 죽이지 못하리란 확신을. 피가 그저 기호식품에 불과하다면 한 번에 물어뜯어 배불리 먹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텐데도 쿠로오가 그에게 복종하는 이유를 츠키시마는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다. 들켰기 때문이다. 쿠로오가 츠키시마를 결코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쿠로오는 피가 아니라, 츠키시마 그 자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네. 쿠로오는 자신의 프라이드란 프라이드는 모조리 짓밟아버리는 그의 조소 앞에서 그저 미소했다. 뱀파이어의 존재를 아는 자, 제 가장 가까운 혈육을 죽음으로 몰아간 존재 앞에서도 겁 하나 내지 않는 자, 오히려 그를 제 발아래에 두려는 자. 처음엔 그저 인간 주제에 보통내기가 아니다 싶어 흥미를 느꼈을 뿐인데. 


언젠가 보았던, 삶에 지나치게 미련이 없는 나머지 죽음마저 달관한 듯한 그 미소 앞에서 쿠로오는 처음으로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손을 놓아버리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이 아슬아슬한 남자를 오히려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런 강한 열망. 쿠로오는 그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 * *




처음 츠키시마의 말을 거부하고 힘으로 제압했던 때를 기억한다. 감히 뱀파이어의 머리 위에 서려는 그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을 잡고 비틀듯 움켜쥐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유독 하얗고 길었던 그 목은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금세 힘없이 꺾여버릴 듯 가늘고 여렸다. 목을 죄고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 츠키시마의 몸이 뒤틀렸다. 살려달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죽음이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 그가 제 몸과 피를 담보로 쿠로오에게 제멋대로 굴었다 한들, 눈앞에 놓인 죽음 앞에선 추악한 본성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는 그런 비참한 모습을. 


그러나 츠키시마는 제 목이 뒤틀려 숨통이 막히던 그 순간, 쿠로오를 향해 웃었다. 고통과 만족, 자조와 기쁨이 섞인 오묘한 표정으로. 마치 이 순간을 예감했다는 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쿠로오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놓았다. 막힌 목이 갑작스럽게 열리며 쏟아져 들어온 공기에 츠키시마가 괴로운 듯 기침을 발작적으로 토해냈다. 콜록거리는 마른 등. 붉게 손자국이 남은 하얀 목.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다가가려는 제 손을 쿠로오는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왜요? 끝까지 안 하고. 죽이려던 거 아니었어요? 난 상관없어요. 여기서 물어 죽이던. 목을 비틀어 죽이던. 하고 싶은 대로 해요."

"..."

"못하겠어요? 진짜, 웃기는 족속들이네. 당신들도."


츠키시마는 허리를 꺾어가며 한참을 웃었다. 제 눈앞에 있는 먹잇감도 해치우지 못하는, 사냥 능력을 잃어버린 맹수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쏟아지는 비웃음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쿠로오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제 손을 말아 쥐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얀 나신에 하얀 셔츠만 걸친 채로, 미친 듯이 웃어대는 그 광기 어린 모습이. 손에 쥐고 싶은 것은 그의 피가 아니라 바로 저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에요."


한참을 웃던 그는 웃음을 멈추고 아직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쿠로오를 바라보며 그런 뜬금없는 말을 뱉는다. 쿠로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궁금한 것? 어디 물어볼 것이 있다면 해보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츠키시마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침대 옆의 창가로 다가가 두툼한 암막 커튼을 열어젖혔다. 쏟아지는 눈 부신 햇살에 쿠로오가 몸을 한 발 뒤로 물렸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궁금하고."


창가에 놓아두었던 커터칼을 집어 든다. 


"하지 마."

"당신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있잖아요. 나 항상 궁금했는데. 당신들은 눈 앞에 피를 두고 굶주리는 게 더 괴로울까, 아니면 살이 계속 타들어 가는 게 더 괴로울까?"

"하지 마!"


츠키시마는 빛이 쏟아지는 창문을 등지고 앉아 커터칼로 제 손목을 깊숙이 그었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로 붉은 선혈이 쏟아져 내렸다. 그의 하얀 몸, 하얀 셔츠, 하얀 침대 시트는 한순간에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진동하는 달콤한 피비린내. 쿠로오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자. 어서 와봐요. 마음껏 마시게 해줄테니까. 나 이거 깊이 벤거라 아마 늦으면 큰일 날 거예요."


창문에 몸을 기댄 채 킥킥 웃던 그는 제 몸을 유혹하듯 쓸어내렸다. 붉은 피는 곧 그의 허벅지까지도 붉게 적셨다. 도발적인 표정과 손에선 점점 힘이 풀려갔다. 목이 뒤로 꺾인다. 햇빛이 무지 밝아요, 오늘. 감상을 늘어놓는 그의 목소리마저 늘어진다. 하... 그의 입에서 더운 숨이 토해진 순간, 쿠로오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몸을 낚아챘다. 힘이 빠진 채 늘어진 몸은 그 거친 손길에 쉽게도 딸려온다. 쿠로오는 피가 뚝뚝 흐르는 츠키시마의 팔을 강하게 틀어쥐고 그의 몸을 안아 든 채 거실로 빠져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도 햇빛에 노출된 쿠로오의 얼굴과 손목에선 불에 그을린 듯한 냄새가 났다. 


"너, 까부는 것도 작작해."

"아하하. 흘린 거 아깝겠다. 마르기 전에 핥아 먹지 그래요?"

"그 입 닫고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너만 힘들어."


쿠로오는 빠르게 거실의 서랍을 뒤져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 상자를 쏟아내듯 털어 붕대를 꺼내 츠키시마의 손목에 단단히 감았다. 온 집안에 진동하는 혈향에 송곳니가 근질거리는 것을 참아내느라 입에선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다급한 그 모습을 힘없이 바라보던 츠키시마가 작게 입을 열었다. 


"겁쟁이."


츠키시마는 그 짧은 비웃음을 끝으로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눈이 스르륵 감기는 그 모습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자신에게 욕지기를 뱉으며 빠르게 그의 호흡과 맥박을 잰다. 힘없이 늘어진 츠키시마의 몸을 소파에 뉘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피범벅이 된 시트를 벗겨내면서, 쿠로오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츠키시마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츠키시마는 츠키시마 자신의 죽음을 가장 바란다는 것을. 


그가 뱀파이어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위세를 떨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제 목숨에 아무런 미련이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헛웃음이 나온다. 그는 제 목숨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츠키시마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보고 있을 것이다. 


쿠로오가 빠르게 응급처치를 한 후 병원으로 데려간 덕분에 츠키시마의 몸엔 큰 무리가 가진 않았다. 다만 과도한 출혈로 인해 며칠을 누워서 끙끙 앓아야 했다. 앓는 와중에도 츠키시마는 쿠로오를 볼 때면 웃겨 죽겠다는 듯 킬킬 웃어대곤 했다. 짜증이 났다. 그 오만한 모습에. 그리고 


"당신, 나 좋아해요?"

"..."

"진짜 웃겨. 피 조금 줬다고 마음까지 동한 건가. 잘난 척 굴더니, 개나 당신네나 다를 게 뭐야?"

"닥쳐. 가만히 누워나 있어."

"당신도 당신 꼴이 웃기잖아요."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약점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상대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단 사실에. 


그날 이후 쿠로오의 뺨과 손등에는 옅은 화상 자국이 남았다. 신사적인 흡혈귀 납셨다며 깔깔 웃는 츠키시마의 얼굴에 약봉지를 집어던지며 쿠로오는 욕지기를 뱉었다. 그럼에도 쿠로오는 이렇다 할 말 없이 츠키시마의 곁에서 그의 회복을 도왔다. 얌전히 누워있을 때만큼은 츠키시마도 더는 쿠로오에게 이렇다 할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공허하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쿠로오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후, 뒤틀린 주종관계는 다시 시작되었다. 츠키시마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저 자신을 담보로 쿠로오를 몰아붙일 줄 알게 되었다. 


쿠로오와 츠키시마. 둘의 관계에서 쿠로오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이 결국 이 관계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 *




반복되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츠키시마는 여전히 오만했고, 쿠로오는 그의 아래에서 개처럼 기며 그의 쾌락을 충족시켜 주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그 안에서 나름의 재미를 맛보고 있는 덕에 어떻게든 그들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다. 쿠로오가 츠키시마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만 하면 그의 몸에 쿠로오의 잇자국 외엔 생채기가 날 일도 없었다. 다만 츠키시마의 갑작스러운 변덕이 기승을 부릴 때면 그가 제 몸에 칼을 대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던히도 해를 써야 했다. 


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변덕만 아니라면, 둘의 관계는 차라리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탐하는, 오로지 쾌락만이 존재하는 관계. 이따금 정사에 불이 붙고 나면 그 어떤 연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농염하고 질펀하게 구르며 서로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면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츠키시마 쪽이다. 


"맛있는 거 먹을래요, 쿠로오씨?"


정사의 시작은 언제나, 어린아이에게 간식을 내밀듯 달콤한 츠키시마의 한마디로 시작된다. 


"애피타이저 치고는 좀 과한데 오늘?"


창가를 향해 놓인 1인용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쿠로오는 기분 좋게 웃었다. 오늘은 그가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쿠로오가 굳이 애타게 조르지 않아도 아름답고 농염한 모습으로 창가에 앉아 쿠로오를 유혹하고 있다. 쏟아지는 밝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제 몸을 쓸어내리는 츠키시마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웠다. 


츠키시마는 환하게 열어젖힌 커튼 아래에서 햇빛을 가득 머금고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쿠로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제 성기를 뒤흔들기 시작하는 그 모습. 피보다도 중독적이다. 쿠로오는 입맛을 다셨다. 츠키시마는 곧 자위에 심취해 신음을 토하며 앓기 시작했다. 풀려가는 젖은 눈망울은 연신 쿠로오를 유혹하듯 바라보고 있다. 


"슬슬 이리 와. 너도 갈증 나잖아."


쿠로오는 츠키시마를 향해 손짓하며 두 팔을 벌렸다.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그는 팔을 벌리면 체구가 훨씬 더 커 보였다. 츠키시마는 쾌락에 취해 풀린 다리로 비틀거리며 천천히 걸어와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반쯤 풀린 눈으로 다시 속삭인다. "맛있는 거, 먹을래요?"


그의 속삭임을 신호로 둘은 격렬하게 서로의 혀를 탐했다. 비좁은 소파 위에서 젖은 물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몸을 겹친다. 거친 숨소리가 뒤엉키며 마침내 츠키시마의 입에서 드높은 교성이 울려 퍼졌을 때, 쿠로오가 자신의 엄지를 입에 가져가 세게 물어뜯었다. 굵은 핏방울이 툭, 툭 베어져 나온다. 


"그거 알아? 인간도 뱀파이어가 될 수 있다는 거."

"하, 으응...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

"시험해보자고."


쿠로오는 핏방울이 흐르는 손가락을 츠키시마의 입안으로 거칠게 쑤셔 넣었다. 그의 피는 츠키시마의 것보다도 훨씬 더 온도가 낮았다. 당황한 그가 미처 항의할 새도 없이 쿠로오는 그의 혀를 짓누르며 귓가에 속삭인다. 


"뱀파이어의 피를 빨면서 흡혈 당하면 뱀파이어가 된다더라고. 멋지지 않아? 나처럼 짐승 같은 놈들이랑 똑같이 되는 거야, 너도."


쿠로오는 그대로 츠키시마의 목에 깊숙이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츠키시마가 미처 그를 막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안에는 기분 나쁜 피비린내가 번졌다. 쿠로오의 목울대가 울릴 때마다 츠키시마는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아, 아으...! 아아아! 쾌락에 젖은 신음과는 다른, 고통에 찬 비명. 짧은 단말마를 끝으로 츠키시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쿠로오는 그제야 츠키시마의 목덜미에서 입을 뗐다. 이 미치도록 달콤한 피를 맛보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상관없었다. 더 달콤한 것을 손에 넣을 테니. 쿠로오는 츠키시마의 늘어진 몸을 고쳐 안고 그의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렸다. 쿵, 쿵. 심장은 기분 좋은 울림으로 뛰는데, 체온은 자꾸만 낮아졌다. 쿠로오에겐 조금 뜨거웠던 그의 온도. 그러나 그것은 곳 쿠로오에게 익숙한 온도로 바뀌어갔다. 쿠로오는 사랑스럽다는 듯, 정신을 놓은 츠키시마의 입술에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 * *




"일어났어?"


츠키시마는 영원히 이 감각을 잊지 못할 것이다. 쿠로오의 품에서 정신을 잃은 뒤 눈을 떴을 때 츠키시마는 침대 위에 벌거벗은 채 뉘어있었다. 저릿저릿한 손끝을 억지로 끌어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을 때, 손이 이상하게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바닥을 펴 들여다본다. 그때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린다. 쿠로오는 1인용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츠키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일어났냐는, 대답할 필요도 없는 그 단순한 안부 인사에도 어쩐지 "네."하고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럴 필요 없잖아. 바보 같은 자신의 의무감을 부정한다. 그 순간 약한 구토감이 일었다. 어쩐지 몸 상태가 이상하다. 덜컥 겁이 났다. 


"츠키시마."


츠키시마는 다시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밤이 깊고 불을 켜지 않아 온통 어두운데도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쿠로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표정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떠본다. 입가의 선명한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계속 멍하게 있을 건가? 슬슬 일어날 시간인데."


그 말에도 츠키시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현기증이 일었다. 


"일어나. 말 들어야지?"


머리를 누군가 세게 치고 가듯 강하게 두통이 일었다. 츠키시마는 침대를 짚고 일어나 그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간신히 눈을 떠 그를 바라본다. 그의 얼굴엔 이제 미소가 자리하지 않았다. 


"소감이 어때?"

"뭐... 가요?"

"나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을 말이야. 아니, 뭐 같다고 하기엔 급수가 낮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넌 이제 햇빛을 보고 살 수 없게 되었단 말이야."


나랑 달리 후천적으로 다시 태어난 놈들은 햇빛에 취약하다더라고. 화상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 모양이니까. 제 입술을 쓸며 그렇게 말하는 쿠로오의 뺨엔 아직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츠키시마가 스스로 손목을 그었을 때 그를 구하다 남은 자국이다. 저 남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다, 츠키시마는 퍼뜩 제 뒤를 돌아보았다.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엔 못으로 난도질당하듯 박힌 두꺼운 나무판자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이게 뭐야? 해가 진 것이 아니었나? 협탁에 놓여있는 작은 탁상시계를 거칠게 집어 든다. 15시 30분.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다. 


"나. 얼마나... 잤어요?"

"일주일쯤? 걱정 마. 그정도로는 아직 허기는 안 질 테니까."


츠키시마는 떨리는 손을 들어 제 입안의 치아를 더듬었다. 송곳니가 이상하리만큼 자라 있었다. 진짜? 흡혈귀가 된 거야? 저 사람 때문에? 혼란으로 뒤엉킨 얼굴로 쿠로오를 바라본다. 쿠로오는 다시 조용한 미소를 띠었다. 


"네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어. 뱀파이어는 절대적인 위계서열이 있어서 말이야. 너처럼 후천적으로 뱀파이어가 된 놈들은 보통 급수가 좀 아래거든."


쿠로오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너는 감히 진조인 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내 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처음 보는 그 소름 끼치는 웃음에 츠키시마는 몸을 움츠리며 팔을 끌어안았다. 짐승 주제에 감히. 날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했던 주제에. 떨리는 시선은 이리저리 허공을 방황하다 협탁으로 향했다. 달려가 열어젖힌 협탁의 서랍엔 늘 츠키시마가 제 몸을 그어대던 커터칼이 놓여있었다. 급히 집어 들어 날을 뽑았다. 그 모습에도 쿠로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여유로운 얼굴로 츠키시마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츠키시마는 그대로, 제 목에 깊숙이 칼을 꽂아 넣었다.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그리고 칼을 잡아 뽑는 모습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쿠로오의 모습에 화가 나서. 제 몸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거나 말거나, 애초에 별 미련도 없는 목숨 따윈 어떻게 되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칼을 잡아 뽑았을 때도, 피가 솟구치고 터져 나오는 기침에 혈액이 튀며 고통이 밀려오는 그 순간에도 어쩐지 죽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목을 찌른 고통은 생각보다 컸지만,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고통이 잦아들었다. 피가 멎는다. 츠키시마는 제 목덜미를 더듬는다. 그 짧은 사이에 나을 리 없는 깊은 상처는 더럽게 엉겨 붙는 피와 함께 금세 새 살을 채워나갔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츠키시마는 허망한 얼굴로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지루하단 얼굴로 츠키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모르는 것이 또 하나 있나 본데. 넌 마음대로 죽을 수 없어. 원래 그런 존재니까."


이제 좀 알겠어? 네 상태를?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지. 죽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죽을 수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거든. 왜 그랬을까? 쿠로오가 뱉는 그 말을 츠키시마는 그저 멍하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의 상태는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츠키시마."

"..."

"대답해."

"... 네."


순식간에 뒤바뀐 이 관계에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그의 아주 단순한 말에도 어쩐지 거역하기가 힘들었다. 빌어먹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올려다본다. 쿠로오의 얼굴은 처음 그를 보았을 때처럼 오만한, 진조로서의 프라이드로 가득 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연다. 


"개처럼 기어봐. 그럼 조금은 귀여워 해줄 테니까."


언젠가 자신이 했었던 것과 같은 명령이 츠키시마에게 떨어졌다. 그제야 츠키시마는 웃을 수 있었다. 그래. 결국 서로의 위치가 뒤집어지더라도 서로가 원하는 것은 같다. 그럼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오히려 이쪽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츠키시마는 천천히 기어 쿠로오의 무릎 앞까지 다가갔다. 그의 무릎에 천천히 고개를 묻는다. 쿠로오는 그를 허락이라도 하듯 서서히 다리를 벌렸다. 버클이 끌리는 소리, 지퍼가 열리는 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옷자락이 스친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들어 그 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핥아."


츠키시마는 밝게 웃으며 쿠로오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쿠로오가 사무치게 가지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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