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자카야에서 만난, 목소리가 섹시했던 남자. 쿠로오 테츠로.
그와의 원나잇은 감히 인생 최고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끝내주는 것이었으나, 츠키시마는 미련 없이 연락처 하나 교환하지 않은 채 모텔을 떠났다.

"좋아. 대신, 다시 만나면 절대 안 놔줄지도 몰라."

고작 원나잇 상대다. 테크닉이 끝내줬건 어쨌건 처음 만나자마자 잤던 상대와는 절대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츠키시마의 룰.

그러나 츠키시마는 해외 출장을 위해 올라탄 비행기 기내 방송에서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고 갈 기장, 쿠로오 테츠로입니다."



*




퇴고 전 샘플입니다. 본문은 공개된 샘플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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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다시 잔을 들어 내 잔에 부딪히고 웃음 짓는다. 가벼워 보이는 (물론, 아주아주 좋게 말해서.)인상이라 웃는 얼굴은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 생각을 하며, 츠키시마는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역시, 오늘은 맥주가 다른 날보다 잘 들어간다. 안주가 꽤, 괜찮으니까. 잔을 내려놓고 관자를 집어 입에 넣었다. 시선을 들어 남자를 보니, 아예 몸을 돌리고 턱까지 괴어가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주, 노골적으로.


“혼자 온 거예요?”

“네. 혼자 온 게 아니었으면 이런 인심 안 썼죠.”

“그것도 그러네.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청승 떨고 있어요? 불금인데.”

“퇴근길에 잠깐 들린 거예요. 회사가 이 근처거든요. 자주 와요.”

“호오... 보통 회사 근처에선 혼자 잘 안마시지 않나?”

“뭐, 그쪽 사람들 잘 안 올 만한 곳으로 온 거니까. 오지랖이 무지 넓은 사람인가 봐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지금은 그쪽한테 관심이 있는 거지만.”

“헤- 철판도 두껍네.”

“칭찬으로 들을게요.”


남자한테 관심이 있냐느니, 어쩌면 당연하게 물어봐야 했을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략됐다. 그런데도 하나 부자연스러움 없이 대화가 이어진 것은, 츠키시마가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 못지않게 남자가 츠키시마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지극히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아래위로 서로를 훑어보는 시선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맥주를 들이켤 때마다, 시선은 지금 목으로 넘어가는 맥주가 아닌 상대방의 몸에 꽂혀있었고, 대놓고 관찰당하는 쪽은 오히려 그 시선을 즐기며 다시 잔을 들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잔은 금세 비었고, 남자는 재빨리 두 잔을 추가 주문했다.


“그럼 그쪽은?”

“나?”

“청승 떨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잖아요.”

“비슷해요. 난 집이 이 근처거든.”

“잘 사시나 봐?”

“잘 사는 동네보다 조금 뒤쪽.”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웃음 짓는 그의 얼굴은 묘하게 나른하고 섹시한 부분이 있었다. 꽤, 내 스타일이네. 어두운 바에서 만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조명이 조금 은은할 뿐 가까운 사람의 얼굴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는 이자카야. 낱낱이 뜯어본 결과 얼굴은 아주 훌륭하다. 아까부터 계속 훑어본 몸도 뭐... 이 정도면 나쁘진 않으려나. 앉아있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걷어 올린 소매 아래의 팔뚝에 잘 잡힌 근육이며, 매끈하게 떨어지는 다리 라인이 제법이었다. 마른 편이지만, 온몸에 탄탄하게 근육이 들어찬 몸. 보아하니 어깨도 꽤 있어 보이고. 정확한 건 벗겨보거나, 최소한 일으켜 세워봐야 알겠지만 나쁘지 않다. 군침이 돌았다. 츠키시마는 다시 관자를 입에 넣어 씹었다. 역시. 안주가 괜찮네.


“너무 대놓고 보시는데.”

“그쪽두요.”

“저야 뭐. 관심 있다고 했잖아요.”

“하하. 뭘 보고?”

“그쪽이랑 비슷한 이유?”

남자는 의자를 조금 움직이더니 노골적으로 몸까지 기울여가며 츠키시마에게 가까이 붙었다. 츠키시마는 그저 턱을 괴고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눈, 예쁘네. 안경 벗겨보고 싶게.”

“그거, 쓴 건 별로라는 뜻?”

“설마.”

남자의 손가락 끝이 츠키시마의 손에 닿았다. 실수는 아니었는지 조금씩 손가락을 쓰다듬는다. 츠키시마는 그저 눈썹을 한 번 꿈틀댔을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안주 안 모자라요? 제가 살게요.”

“지극정성이시네.”

“좀 더 가까워지고 싶거든. 그쪽이랑.”

“안주는 뭐... 충분해요. 오늘따라 안주 끝내주게 맛있네.”


츠키시마는 맥주가 반쯤 남은 잔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남자를 끈적하게 바라보던 눈은 눈웃음에 살짝 휘어져 어쩐지 요염한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는 알아들었다는 듯 기분 좋게 웃는다. 오, 눈치도 빨라. 척이면 척이네. 답답하게 굴지도 않는다. 이건 합격.


“그쪽은 모자란가 봐요? 안주 말이야.”

“그럴 리가요. 저야말로 차고 넘치지.”


남자는 손가락을 쓸던 손으로 이번엔 츠키시마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손등을 내려다보다, 시선을 츠키시마에게로 향한다. 먹이는 놓치지 않겠다는 맹수의 눈빛이다. 섹시하네. 합격.


“안주는 입에 넣고 먹어봐야 맛을 알지 않겠어요?”


남자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츠키시마의 입술을 훑었다.


“그럼 다칠 텐데?”


츠키시마는 입술 끝으로 그 손가락을 살며시 물었다.


“저런. 조심해야겠네.”


남자는 더 깊이 몸을 숙여 츠키시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갈래요?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짜릿한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대답 대신 그의 귀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남자의 낮은 웃음소리에 귓가가 간지럽다.


츠키시마가 놓아두었던 가방을 주워드는 사이, 남자는 빠르게 주문한 안주와 맥주의 계산을 마쳤다. 술만 계산한다면서요? 카드를 꺼내던 츠키시마가 의문을 제기했으나, 그는 따로따로 계산하기 번거로우니 자신이 내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흐응... 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니 감사히 그 호의를 받기로 한다. 츠키시마는 남자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어때요. 우리 집으로 갈래요?”

“난 처음 만난 사람 집으론 안 가요. 상대방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한 장소는 별로거든.”

“호- 처음 만난 사람이랑 섹스는 하고?”

“그건 유흥이니까.”

“좋아요. 그럼, 모텔을 잡아야 하나. 그런데 난 이 주변 모텔 웬만한 곳은 다 가봤는데. 이러나저러나 나한테 유리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

“사실, 나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편이 더 공평하죠.”

“대단하네-”

“그쪽도.”

“좋아. 그럼 그쪽이 잘 아는 곳으로 가요. 난 군말 없이 따라갈 테니까. 보아하니 의심이 많은 사람 같은데 이 정돈 해줘야지.”

“지극정성이다. 진짜로.”

“맘에 들었거든. 진짜로.”

“... 작업 멘트로는 진부하네요.”

“그건 미안해. 그치만 이쪽이 더 진심 같잖아.”

“말은 왜 은근슬쩍 놓는데요?"

“내가 그쪽보다 연상이길래.”


난 말을 놔야 좀 친근해지더라고. 잘 부탁해. 츠키시마... 호타루씨? 그는 내 목에 걸려있던 아이디 카드를 빼 들어 곰곰이 읽었다. 앗차. 생년월일에 이름, 사진까지 붙어있는 아이디 카드다. 젠장. 내가 이자카야에서 원나잇 상대를 구할 줄은 몰랐지. 목에 이게 걸려있는 걸 잊었다. 회사 아이디 카드엔 왜 이딴 게 죄다 적혀있는지. 재빨리 빼앗아 집어넣었지만 이미 한참 늦고도 남았다. 빙글빙글 웃는 그 얼굴이 기분 나쁘다. 완전히 페이스에 말려들었어. 주도권을 다시 쥐려면 꽤 애를 먹을 것이다.


“짜증 나. 이런 거 원래 이름 알리는 거 아니잖아요. 갈래요.”

“아니- 미안해. 그냥 보이길래. 이름을 너무 알고 싶었어. 미안. 이건 내가 무례했다.”


대신 나도 다 알려줄게. 자자. 이거면 됐지? 신분증명 확실하잖아. 그가 보여준 것은 운전면허증. 주민등록 번호에 이름에, 사진까지 몽땅 붙어있다. 나보다... 두 살 연상인가. 이름은, 쿠로오 테츠로.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니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걸로 화가 풀리겠어? 호타루군.”

“이름 말고 성으로 불러요. 그리고 호타루 아니니까요.”

“그럼 케이?”

“성으로 부르라고 했어요.”

“알겠어요. 츠키시마 케이군.”


평소라면 진작 뺨을 때리고도 말았을 터다. 무례해. 사람이 그어놓은 경계를 아주 가볍게 넘나드는 무례한 남자. 그러나 뺨을 때리긴커녕 그의 팔을 이끌고 주변의 가장 괜찮았던 모텔로 데리고 가는 것은 다시 훑어본 그의 몸이 앉았을 때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군침이 돌았다.


골목을 빠져나와 번화가의 뒷골목으로 걸었다. 리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서로가 서로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금요일 밤. 원나잇하기 딱 좋은 밤 아니겠나. 모텔이 즐비한 거리로 들어섰다. 아마 이곳을 거닐고 있는 많은 사람이 비슷한 목적으로 방을 찾고 있을 터다. 뺏길 수는 없지. 빠르게 생각해둔 모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던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뭘 웃어요?”

“나보다 급해 보이길래. 기뻐서.”

“자꾸 놀리면 안 가요.”

“알겠어, 알겠어. 미안해. 놀리려는 건 아니었어.”


내가 앞장섰으면 들고 뛰었을 거야. 그것보단 낫잖아. 아주 입만 열면 하는 소리가 저런 식이다. 대강 무시하고 모텔로 들어갔다. 딱히 특별할 것은 없지만 비교적 깔끔하고, 무인텔이라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곳이다. 회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나름대로 신중하게 골라 봐둔 곳이다. 괜히 아는 사람 마주쳐서 좋을 것 없지. 방을 잡고 일회용품을 산 뒤 방으로 들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밤은 길지만, 경우에 따라선 너무 짧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 * *




회사에선 다가가기 힘들다거나 철벽이 세다든가 하는 평판을 받는 편이지만, 사실 츠키시마는 꽤 원나잇을 즐기는 편이다. 쿠로오에게 이 근처 모텔을 다 가봤다고 말한 것도 마냥 허풍만은 아니었다. 다 가보진 않았지. 안 가봐도 견적이 나오니까.


그런 그에게는 나름의 원나잇 철칙이 몇 가지 있었다. 원나잇 상대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것. 원나잇 상대의 집에서 하지 않을 것. 원나잇 상대에게 펠라를 해주지 않을 것. 키스도 제대로 못 하는 놈과는 원나잇을 하지 않을 것. 그러므로 반드시 본론에 들어가기 전 키스부터 해볼 것.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것. 금지조항투성이인 철칙이지만 결국 요지는 맨 마지막이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것.


험하게 말해서, 정말 거지 같았던 상대에게 호되게 데여 정강이를 걷어차고 나온 적이 몇 번 있고 나서 그가 이를 갈고 또 이를 갈며 다짐했던 것들이다. 원나잇이란 자고로 위험요소가 차고 넘치는 것. 물론 그게 짜릿한 거겠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나쁠 것은 없다. 게다가 제 뜻대로 되지 않고 타인의 페이스에 휘둘리는 것은 딱 질색인 츠키시마에게 관계의 주도권이란 결국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것. 제멋대로 상대를 주무르며 얻는 쾌락은 얼마나 짜릿한가!


그렇게 따지면 사실 이 남자는 진작 아웃이어야 맞았다. 당장 첫 번째 조건인 ‘이름 알려주지 말기’부터 깨지지 않았나. 이름뿐만이 아니라 나이, 회사까지 알려졌으니 주저하지 않고 택시를 잡아 탔어야했지만, 그가 능청스럽게 자신의 신분증까지 내밀어보이며 설득한 통에 결국 여기까지 와 있는 거다. 이거 괜찮은 건가? 그런 걱정이 아주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뭐. 어쩔 거야. 이렇게 몸이며 목소리며 끝내주는 남자는 찾기 쉽지 않다. 뭣보다 목소리가 말이야. 이 목소리로 흥분에 차 거친 숨을 토해내는 것을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어쨌든 집에 가자는 건 잘 쳐냈잖아.


“키스는? 원나잇할 땐 키스 안 한다는 사람도 있길래.”

“그건 기본 인사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남자는 입꼬리를 당겨 웃더니 그 얼굴을 감상할 틈도 주지 않고 입술을 겹쳐 왔다. 얼굴을 감싼 손길이 부드러웠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술을 연다. 도발하듯 혀를 밀어 넣어 크게 휘저었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이. 맞붙은 입술 사이로 웃음 섞인 숨결이 전해져온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부터 목, 등, 허리를 쓸어내리며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


아.


젠장. 잘하잖아...


“아, 우음... 후, 으응...”


뭉근하게 쓸어 올리던 혀가 부드럽게 입안을 노닐다, 나도 모르게 숨이 터져 나오는 곳을 집요하게 희롱한다. 손도 쉬지 않고 온몸을 쓰다듬는다. 어느새 그의 품에 안겨 정신없이 그의 키스를 받아냈다. 흥분한 몸이 서로를 밀치고 뒤엉켜 자꾸만 벽에 부딪혔으나, 아픈 줄도 몰랐다. 더... 더 해줬으면. 응석 부리듯이 그의 혀를 질척하게 말아 올리며 하반신을 붙였다. 키스만으로도 절로 허리가 들썩인다. 이건 고작 더 큰 쾌락으로 들어가기 전의 준비운동일 뿐이다. 준비운동에서도 혼을 쏙 빼놓는 정도니 본론은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더 해줘. 조금만 더.


몸이 점점 애탈 때쯤 그가 입술을 쭉 빨더니 그대로 입술을 떼었다. 잠깐 간만 보려고 했는데 언제 이렇게 몰입했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끌어안고 거친 숨만 헉헉 몰아쉬었다.


“하... 잘하네.”

“그쪽도, 꽤.”

“어때. 해볼 맘이 생겼어?”

“글쎄요.”


습관적으로 부정했지만, 이미 잔뜩 흥분한 몸은 통제가 되질 않는지 나도 모르게 그의 셔츠를 쥐고 끌어당겨 다시 깊게 입을 묻었다. 비웃을 줄 알았는데 급하긴 이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몸을 바짝 붙이며 끌어안아 온다. 입술 사이에선 자꾸만 뒤섞이는 혀와 혀 사이의 촉촉한 물소리와 참지 못하고 터지는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정신없이 뒤엉켜 뒷걸음질을 치다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끈질기게 입술을 물어오던 그가 몸을 떨어뜨리고 하- 한숨을 쉬고 입술을 핥는다.


아. 숨소리도 섹시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이 남자가 쾌락에 몸을 떨며 내뱉는 신음만 들어도 웬만한 섹스보다야 훨씬 더 만족스러울 것 같다. 게다가 이런 남자는 여유 있는 태도를 무너뜨리는 맛도 있는 법이지. 어쩐지 묘하게 승부욕도 자극되는 것이... 그래. 오늘 다른 건 몰라도 귀 호강은 제대로 하겠네.


“하... 당신, 원나잇 할 때 펠라 해달라는 말 자주 듣지?”

“네. 절대 안 해주지만.”

“그 사람들 기분 알 것도 같네. 혀 장난 아니야.”

“그거 고마운 칭찬이네.”


자꾸 뜸 들일거에요? 여기 급하지 않아? 발을 들어 어느새 불룩해진 그의 사타구니를 가볍게 눌렀다. 발밑의 묵직한 부피감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발을 누르듯 움직여 바지 아래에 놓인 것의 모양과 크기를 가늠해본다. 어차피 곧 벗겨서 제대로 훑어볼 수 있을 테지만 말이야. 발로 상대의 성기를 잔뜩 희롱해놓는 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츠키시마가 즐기는 작은 유흥거리. 불룩한 끝부분을 발끝으로 꾹꾹 눌렀다. 언젠가 이 정도 자극에도 바로 가버리는 놈을 만나는 바람에, 김이 팍 식어 그대로 옷을 주워 입고 나왔던 적이 있었다. 최악이었던 섹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오히려 이를 즐기는 듯 잔뜩 여유로운 표정이다. 그래. 최악의 상황에 자꾸만 비교하면 안 되지. 보기 드문 훌륭한 안주니까.


잠시 자극을 즐기던 그가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어 가슴팍을 주물러온다. 손가락이 유두를 지그시 누르고 비벼댈 때마다 찌르르한 자극이 전해져오는 탓에 하- 젖은 숨을 뱉으며 도발하듯 바라보았다. 잔뜩 날카로운 그의 눈 역시 어디까지 가나 해보자는 듯 도발적이다.


그래. 섹스 전 애무는 일종의 탐색전이지. 승부를 걸어온다면 응당 받아줘야 하는 법. 이미 가슴이 훤히 드러나도록 풀어헤쳐진 셔츠를 벗어 던졌다. 그 역시 빠르게 셔츠를 벗어 침대 아래로 던진다. 복근이 잘 짜인 탄탄한 몸. 과연, 대충 걸치고 나온 것 같은 티셔츠로도 떡 벌어진 어깨 덕분에 핏이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 절로 군침이 도는 몸이다. 합격.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네네. 곧 이륙할 겁니다. 저 없는 사이에 업무 관련한 사항은 저번에 보내드린 파일 참고하시면 될 거에요. 급한 용무는 메일로 보내주세요. 네. 끊습니다.”


츠키시마는 통화를 끊고 좌석 깊이 몸을 묻었다. 핸드폰은 일찌감치 비행기 모드로 돌렸다. 아직 승객들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중이니 이륙하는 것은 몇 분 뒤겠지만, 쓸데없는 연락에 신경 쓰느라 두통을 앓느니 아예 연락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급한 연락은 없겠지. 출장 간다고 야근까지 해가며 얼마나 바쁘게 굴렀는데.


일주일간의 해외 출장. 동료들은 출장 핑계로 놀다 올 수 있겠다며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지만, 출장 다녀온 후 밀려있을 업무에, 긴 비행시간, 그 긴 비행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은 해외 체류 기간, 출장이라고 했더니 한 번에 쏟아져 왔던 업무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국적기 비즈니스석에 올라탈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 이 정도면 좋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이 정도도 안 해주면 누가 가겠냐 싶기도 했다.



츠키시마는 장기비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좁은 곳에 한참 몸을 구기고 앉아있어야 한다거나, 민폐 승객이 있을 때엔 짜증이 나거나, 기내식이 맛없다든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츠키시마는 비행기에선 당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잠자리도 가리는 편이라 출장도 싫어하는 마당에, 제대로 된 침대도 아닌 비행기 좌석에서 잠들 수 있을 리가 없지. 덕분에 체감비행시간이 남들의 배는 되었다. 한 번은 비행기서 좀 자보려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타보기도 했지만, 퀭한 눈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하루 일정을 몽땅 망친 뒤로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이번엔 술이라도 왕창 마셔볼까. 술을 마신다고 잠이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디 가져온 책이 지루한 비행시간을 달래줄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평은 좋던데. 두고 봐야겠지. 허리에 둘러진 좌석벨트가 벌써 갑갑하다.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비성수기의 영향인지 자리가 전부 차지 않아 제법 한산하다. 그건 다행이었다. 오갈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창가 자리는 선호하지 않아 일부러 복도 자리를 골랐지만, 바로 옆자리도 비어있는 덕분에 자리는 훨씬 쾌적하다. 기내 안전에 대한 승무원의 안내가 끝나고, 동체가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이륙했다. 빠르게 지상과 멀어진다. 츠키시마는 눈을 감고 몸을 짓누르는 기압을 견뎌냈다. 안정 기류에 접어들 때까지 츠키시마는 굳이 눈을 뜨지 않았다. 이마를 짚고 길게 한숨을 뱉는다.


야근에, 야근에, 야근을 하고 고작 딱 하루 쉰 다음 올라탄 비행기. 몸의 피로도 피로지만 정신적 피로가 더하다. 여기 진짜 야근 너무 많은데, 조만간 때려치우고 새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이 최근 진지하게 들고 있다. 이만한 조건의 직장을 구하기 쉬운 것이 아니기에 그나마도 짧게 고민하고 다시 현실을 직시하곤 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긴 했나 보다. 츠키시마는 안경을 벗어 닦았다. 스트레스라. 스트레스 풀 유흥거리가 너무 적긴 했지.



최근 츠키시마의 유흥이라면 역시 그거였다. 원나잇. 서로 즐길 것 딱 즐기고 나와 제 갈 길 가는 쿨한 관계. 지금 저한테 필요한 것은 오로지 타인과의 신체적 교류. 정신적 교류 같은 피곤한 것은 필요 없으니 원나잇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원나잇을 할 시간도 없었냐면 그건 아니다. 주말엔 어쨌거나 쉬었었고, 실제로 클럽이나 바를 어슬렁거리곤 했으니. 그렇다면 원나잇을 구하지 못했느냐. 그렇게 묻는다면 그건 너무 무례하지. 괜히 원나잇이 유흥이란 것이 아니다. 괜찮은 남자를 찾아 다가가 꼬시는 것에는 이제 도가 텄을 정도로, 츠키시마는 원나잇 성공률이 높았다. 게다가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혹시 시간 있으시냐며 붙어오는 남자도 많았으니, 그중에 적당한 사람을 골라 모텔로 데리고 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잠자리가 별로였느냐? 그건 좀 고민해볼 문제다. 별로인 놈이 아예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대체로 최근 한 섹스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름대로 침대 매너까지 갖춘 놈도 있었고, 몸이 좋았던 놈도 있었고, 사랑에라도 빠진 양 엄청나게 물고 빤 놈도 있었고(귀찮기만 했지만), 꽤 많이 자봤는지 테크닉이 괜찮았던 놈도 있다. 분명 만족스러워야 할 섹스였지만,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츠키시마에게 있었다. 이젠 이런 정도로는 성에 안 찬다는 것.



그러니까 그 남자와 잔 게 문제였다. 쿠로오 테츠로. 원나잇 철칙이니, 자존심이니 죄다 내려놓고 달려들었던 그 날 이후 아무리 좋은 섹스를 해봤자 그때와 비교가 되는 통에 영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정말 완벽했다. 얼굴도 괜찮은데 몸은 정말이지 이상형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이었고, 심지어 그곳도 츠키시마의 몸에 일부러 맞춘 마냥 길이나 크기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테크닉도 끝내줬지. 허리를 돌리고 쳐올리는 힘에 완급조절이 보통이 아니라, 대체 이걸 어디서 배워왔는지 출처가 궁금할 정도였다. 섹스에 배려가 묻어났지만 그렇다고 멍청하게 상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만 하지도 않았다. 아프다고 앙탈이라도 부리면 놀리듯 더 격렬하게 쳐올리는 주제에, 몰아친 쾌감에 몸이 버겁다 싶으면 금세 입을 맞추고 허리를 돌려가며 페이스를 맞춰줬다. 일단 튕기고 보는 츠키시마였기에 그의 말 중 무엇이 진심인지 파악하기 까다롭단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 남자는 어디서 만난 적이라도 있는 듯 척하면 척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적절히 낮은 음색의 섹시한 목소리. 심지어 숨소리와 신음마저 섹시해서 정말이지 귀를 죄다 녹여버리는 줄 알았다. 츠키시마의 철벽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것은 사실 이 목소리의 공이 컸다. 그 목소리로 거칠게 숨은 몰아쉬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데, 대체 어떻게 안 넘어가겠나.


그럼 다시 만났으면 될 텐데.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매달리는 것 같잖아. 너무 좋아서 오히려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는 그 이자카야에 자주 간다고 했으니 그곳에서 맥주나 한잔하며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날 이후로는 그 이자카야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괜찮은 술집을 잃은 것은 아쉬웠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든가 그날 밤을 못 잊는다든가 하는 것은 죽어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술집이야 뭐 다시 찾으면 되니까.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을 아예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거긴 자주 갔는걸. 그냥 또 술을 마시러 가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맛있는 안주와 맛있는 술을 즐기다 운이 좋으면 더 끝내주는 안주가 나타난다. 그날 밤처럼. 그러나 기대를 품고 찾아갔다가 못 만나면? 그때의 그 민망함과 박살 나는 자존심은 누가 보상해줄 거야. 그래서 아예 스스로 온갖 핑계를 다 대며 피한 것이다. 누군가 미련하게 군다고 놀린대도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츠키시마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래도, 한 번만 더 듣고 싶다. 그 목소리. 그러니까 지금 들리는 이 안내방송처럼 섹시한 목소리를...



순간 츠키시마는 눈을 번쩍 뜨고 기내에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지금. 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거다. 기내 스피커에서.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고 갈 기장, 쿠로오 테츠로입니다. 오늘도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항공기는 도쿄 나리타 공항을 출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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