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수업때문에 방과후에 교실에 혼자 남아서 수학문제로 머리 끙끙 싸매는 케게야마랑 담당 수학교사 츳키로 카게츠키 보고싶다. 츳키 바로 앞자리 책상에 거만하게 앉아선 카게야마 문제 푸는거 봐주는 츳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아... 이보세요 낙제생군. 비 쏟아지기 시작했잖아."
"아. 진짜네."
"우산 없는데 망했네. 우산 있어?"
"..안가져왔는데요. 차 타고 다니시는거 아니에요?"
"버스 타고 다녀."


워낙에 카게야마가 방과후에 남을 때가 많아서, 둘만 남으면 츳키는 저세상 거만한 태도로 본성 드러내놓겠지. 평소엔 세상 친절한 미소로 늘 웃는 낯이라 학생들에게 인기 많던 츠키시마 선생님.


하지만 카게야마는 그게 대강 학생들과 거리를 두려는 방어막인걸 알게된지 꽤 되었고. 다른 놈들도 이 인간이 얼마나 재수없는질 알아야하는데. 삐죽 튀어나온 얼굴로 잡생각 하고있으면 츳키가 발로 책상 툭툭 건드리면서 


"어이. 딴생각 말고 풀어."

"풀고있다고요.." 


투덜대면서 마저 문제 푸는 카게야마. 츳키는 그걸 가만히 보고있다가 비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까전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학생이건 선생이건 빠르게 귀가했고, 아무도 없어 적막한 학교에 남아있는건 아마도 둘뿐.


교무실에 굴러다니는 우산이 있던가. 생각해봤지만 아까 옆반 국어 선생님이 혹시 모르니 빌려가겠다며 한달째 교무실 구석에 놓여있던 주인모를 우산을 들고간게 떠오르겠지. 아 진짜 망했다. 곧 그칠 비처럼 보이지도 않고.

쯧. 혀를 차니 발끝을 툭 차는게 느껴진다.


"다 풀었는데요."
"건방지게 선생을 차?"
"아까 쌤도 발로 쳤잖아요."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내놔봐."


투덜거리는 카게야마가 프린트를 내밀자 츠키시마는 빨간 선이 죽죽 그어져있는 종이를 보고
 대강 채점을 시작한다. 잘 모르겠다며 한참 씨름했던 문제는 다행히 이번엔 정답.


"정답. 드디어 끝났네. 집에는 못가겠지만."
"왜요?"
"비오잖아."
"아"


가방을 정리하던 카게야마는 그 말에 다시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둘은 딱히 대화가 없다. 비 쏟아지는 소리.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 이따금 자세를 바꾸다 내는 작은 소리만 교실에 남아있고. 어쩐지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고요함이지만 그럼에도 어색함은 없는.


"안그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빨리빨리 좀 풀란말이야"
"그게 제 맘대로 되냐고요."
"맘대로 되어야 이 짓을 더 안하지요. 초과근무라고"
"윽.."
"비 오건말건 뛰어서 가야하나. 넌 집 어떻게 가?"
"원래는 자전거요."
"너나 나나. 망했네."


혹시라도 비가 그칠까 가만히 기다려보았지만, 비는 더 무섭게 쏟아질뿐 그칠 생각을 않는다.


"알아서들 가자. 난 간다."
"어떻게 가게요?"
"뛰어야지. 그럼 수고."


그렇게 책상에서 내려와 교실문을 열고 나가는 츳키. 짐은 서류가방뿐이지만
 이것도 비에 쫄딱 젖으면 답없을 것 같아 교무실에 두고 가려고 교무실로 향하는데, 교실 문이 다소 급히 드르륵 열리며 카게야마가 뛰어나온다.

"쌤! 저 있어요 우산"
"엉?"
"사물함에 둔게 있더라구요"
"그걸 왜 이제 말하는데?"
"..잊고있었어요"

"어디까지 바보인거야?"
"아 어쨌든. 버스정류장까지 씌워드릴게요. 같이 가요."


그 말에 한숨 푹 쉬면서 도로 몸을 돌려 카게야마에게 가는 츳키. 카게야마의 사물함엔 꽤나 큰 접이식 우산이 있었다. 마르편이긴 해도 둘 다 어깨는 꽤 넓은 남자들이니
 우산 하나에 구겨들어갈 수나 있을까 했는데. 이정도면 어깨 한쪽 내어주는걸로 어떻게든 되려나. 결국 함께 우산을 쓰고 학교를 나서는 둘.


"이렇게 큰게 사물함에 버티고 있는걸 용케 까먹는다. 대단하네."
"..아 잘 안보면 그럴 수도 있죠."

"교과서 안들어있어?"
"..."
"곧 시험이야. 정신차려."
"...네."


그렇게 투덜투덜 하면서 걸어가는데, 어쩐지 츳키 어깨는 젖지 않았고. 흘끔 보니 그래도 저때문에 비오는날 이 늦게까지 남은 선생님에게 죄책감은 있는지 우산이 묘하게 츳키쪽으로
 더 기울어있다. 그새 폭삭 젖은 카게야마의 오른쪽 어깨. 그리고 가방.


"가방 이쪽으로 매. 다 젖잖아"
"불편해요"
"책 다 젖잖아. 이보세요. 시험이 코앞입니다."
"아 진짜"


그제야 입 대빨 나와선 낑낑 가방 방향 바꾸는 카게야마.

축축해진 가방에 닿은 츳키의 옷자락도 덩달아 조금 젖었지만, 딱히 그것까지 지적하진 않고 그냥 두었다. 그렇게 도착한 버스정류장. 간이역이라서 비를 피할 곳은 없고 여전히 함께 우산쓰고 버스를 기다리게 되겠지.



버스는 비때문에 늦는건지, 간발의 차로 놓친건지 금방 오질 않고. 별수없이 둘이 두런두런 떠드는데 대부분 츳키의 잔소리와 카게야마의 볼멘 대답.


"수학 또 낙제점 받아오기만 해"
"어렵다구요.."

"설명 해주면 그래도 어느정도 풀긴 하잖아. 머리를 굴리시라구요"
"네.."


영 신통치 않은 대답에 츠키시마가 흘깃 카게야마를 째려보고. 카게야마는 우산을 든 채 대강 발 언저리를 보며 발만 툭툭 땅을 차는 것이 딱히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듣진 않은듯.


"낙제점 안받으면 보충 안해요?"
"엉. 그래야 이 지겨운 것도 끝납니다. 너나 나나 서로 피곤하니까 잘 좀 하자"
"..그럼 쉽게 내기나 하던가"
"내 담당중에 낙제 너밖에 없거든?"


또 서로 툴툴대며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스승과 제자라기엔 워낙에 허물이 없어서 꽤 자주 있는 모습인듯 했다. 듣는 사람은 질색하겠지만 싸우다 정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어쩐지 친해보이기도 하는 두사람. 그러고 있자니 저멀리서 츳키가 타야할 버스가 보이고.


"그러고보니까. 내려선 어떻게 해요?"
"뛰어야지 뭘 어떡해."
"정류장에서 멀어요?"
"조금. 이건 뭐 중간에 우산을 사나마나겠네."
"흐음.."


버스가 다가온다. 츳키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잘 좀 하자. 간다." 인사를 건낸다.



버스 문이 열린다. 카게야마는 버스에 올라타는 츳키의 몸이 젖지 않도록 버스 문앞까지 와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버스 기사는 그도 버스를 타려는 줄 알고 문을 조금 더 오래 열어두었다.


"잠깐만요."
"어?"


그리고 급히 우산을 접는 카게야마


왜저래?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버스 문밖에서 우산을 접어버린 카게야마는 푹 젖은 우산을 대강 말아 츳키의 발 언저리, 그러니까 버스 안으로 던져넣는다.

"들어가세요!"


우렁차게 외치며 허리를 푹 접어 꾸벅 인사하곤 뒤돌아 빗속을 달려가는 카게야마



발등에 떨어진 우산. 그리고 그덕에 폭싹 젖은 왼쪽 발목. 어어? 당황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바라보는 사이 저 버릇없는 제자는 빗속을 달려 저만치 멀어졌고. 버스를 타는 승객을 바라보다 덩달아 놀랜 버스기사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문을 닫았다.

"제자에요?"
"아..네..뭐"
"학생이 착하네~선생님 배려할 줄도 알고"
"하하...뭐. 그렇네요."


개뿔. 착하긴 뭐가 착해. 선생한테 우산을 던지잖아. 그 말은 입안으로 삼킨채 건방진 제자가 던진 젖은 우산을 집어 빈 자리로 가 앉는 츠키시마.


이제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건방지고, 꽤나 이것저것 바보같이 서투른 어린 제자는 저 안의 감정을 제대로 숨길 줄도 모르는듯 했다. 그러니까 저 그 나이또래가 으레 겪는, 사춘기의 열병을 앓고 있는거다. 건방진 새끼. 선생으로도 안본다 이거지.


우산이 없다느니 있는걸 잊었다느니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나 해대고. 아마 수학 성적은 올릴 생각이 없을거다. 수학을 유독 못하는건 맞지만 조금만 더 하면 낙제점까지 받을 정도는 아닐텐데. 보충수업으로 협박을 하느니 성적 향상에 대한 보상을 거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츠키시마는 비오는 창밖을 보며 한숨을 푹 쉰다. 더운 입김에 습한 창문엔 하얗게 김이 끼었다. 보상은 뭘로 해야하나. 떠올리는게 더 귀찮은데 그냥 그쪽에서 정하라고 해야하나. 진짜 온갖걸로 머리아프게 한다. 건방진 제자놈.



그러나 츠키시마는, 역시나 가장 머리아픈건 이 상황이 싫지도 않거니와 사실 꽤 전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던 자기 자신이란걸 아주 잘 알고 있다. 저를 선생으로도 보지 않는 제자나, 제자를 제자로 보지 않는 저나 비슷하겠단 생각에 짜증이 났다.


보상같은건 귀찮으니까, 대충 원하는 것 하나 들어주겠다 정도러 퉁치자고 대강 결론을 내고 츠키시마는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얼마 안가 곧 내려야하니 잠들지는 않을거지만, 머리가 아파 그냥 눈을 감고 싶었다.



젖지 않고 보송한 어깨와는 달리, 바지는 비에 푹 절은 우산때문에 여기저기 축축했다. 비오는 날은 역시 이것저것 귀찮다고, 츠키시마는 대강 그런 생각을 하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다시 떴다. 버스는 츠키시마를 내려줄 정류장을 향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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