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의 변명]

 



모두가 이미 깊게 잠들었어도 남았을 시각. 창문이 거칠게 흔들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커튼을 살짝 걷어 창 밖을 바라본다. 평소라면 풀벌레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만이 귀에 맴돌았을 텐데, 지금은 거센 비바람이 창문을 쉴 새 없이 때려대는 통에 귀가 다 먹먹하다. 비바람 사이로 하늘은 불안하게 우릉우릉 울어댄다. 폭풍우가 심상치 않다.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난 것도 전부 이 폭풍때문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겠다.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난게 아니라, 사실은 전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봐도 귀 사이로 파고드는 비바람소리와 감은 눈 너머로 이따금 번쩍이는 빛 때문에 도무지 잘 수가 없다.



"아니야… 손오공. 잘 수 있다. 무섭지 않다. 잘 수 있다. 무섭지 않…아니 무서워하는게 아니라. 어쨌든 난 잘 수 있다…"



일부러 소리내어 자신을 다독이다 어쩐지 비를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된 것 같아 급히 정정한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쩐지 이 와중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문득, 왜 새삼스럽게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실제로 자신은 비가 오건, 천둥이 치건, 바람이 불건, 심지어 삼장이 불러 깨울 때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실컷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마지막의 경우는 조금 예외여서, 삼장이 무언가를 집어 던지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일어나곤 한다. 이건 일종의 생존본능 같은 거라고 언젠가 팔계가 말한 적이 있다.) 


비는 무섭지 않다. 언젠가 팔계나 삼장이 비오는 밤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은 있지만, 나는 이 경우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애초에 비보단 눈 오는걸 더 싫어하니까… 그런데도 오늘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낮에 팔계에게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 때문일지도… 오정을 놀린답시고 '비 오는 날 남자 혼자 있는 방에선 입이 귀 끝까지 찢어진 귀신이 거꾸로 매달려 머리맡에서 쳐다본다더라.'따위의 말을 했던 것이다. 귀신얘기야 영감이 전혀 없는 오정에게나 무섭지, 나에겐 그저 오정 놀림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는데… (사실 그 이야기보다도 그걸 얘기하는 팔계의 표정이 더 무서웠다.) 하필 그런 얘기를 듣고 난 밤에 정말 비가 쏟아지니 어쩐지 으스스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으 제기랄, 오정이 알면 분명 놀려댈게 뻔한데. 자긴 눈썹이 이렇-게 구겨져서는 온 몸이 뻗뻗하게 굳어있었던 주제에…



그러고 보면, 삼장은 어쩌고 있을까? 우리 넷 중에 비 오는 날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삼장일텐데. 비 오는 날 잠을 못잔다던가 하는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삼장은 이렇게 비가 몰아치고 난 다음날이면 유독 피곤해하곤 했다. 아마 자더라도 제대로 깊게 잠들지는 못할게 뻔하다. 아아… 그럼 내일도 하루 종일 짜증낼텐데. 제대로 자고 있지 못할 삼장이 걱정되기도 하고 (그리고 내일 그 짜증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나도)삼장 방을 살짝 가봐야 하는 게 아닐지. 하지만 내가 간다고 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애도 아니고 등을 토닥여준다던가 머리를 쓰다듬어준다던가 한다고 잠들지도 않을거고… 애초에 그랬다간 부채로 얼마나 세게 얻어맞을 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걱정은 되지만 역시 그냥 두는 게 좋으려나. 괜히 잠들어있는걸 깨울 수도 있는 거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창 밖에서 빛이 번쩍이는 동시에 온 방을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귀를 사정없이 때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베개를 한 손에 쥐고 방 문 앞까지 뛰어나간 뒤였다.

그래. 삼장 방에 가보자. 이건 삼장이 정말 너무나도 미친 듯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진짜로.

 


 

빠르게 걸어 (그래봤자 옆방이지만) 삼장의 방 문 앞에 서 문고리를 잡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한 번 고민해본다. 이 시간에 삼장 방에 비집고 들어가도 괜찮은 것인가. 자고 있는지 아닌지 살짝 상태만 보고 나올까. 깨면 어떡하지? 뭐라고 하지? 짜증 엄청 낼텐데… 뭐 이따위의 나답지 않은 온갖 고민과 잡념으로 망설이느라 문고리를 미처 돌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다시 한번 엄청나게 큰 천둥 소리가 귀를 때렸고.

 



나는 이미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있었다.

 


 

...아차….. 실수했다…

 

 


 

 

"… 뭐냐 너."

"…어...어?"


갑작스런 천둥소리에 대한 놀람, 조심성 없이 문을 열어젖힌 내 행동에 대한 당황스러움, 자다 깬 삼장에게 혼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내 눈앞에 보인 건 창가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는 삼장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봐도 자다 깬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지도 않았던 것 같은 모습. 에, 말도 안돼. 평소엔 엄청나게 일찍 자러 들어가는 주제에…



"자는 거 아니었어?"

"신경 꺼. 그보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뭐하는 거냐 네놈은."



삼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내 위아래를 훑다가 이윽고 내 손에서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내 손에 들린 베개에.



"...그건 또 뭐야."

"에… 그러니까 이건 말야. 그, 잘 때는 필요하잖아. 베개가."

"...그딴 헛소리 하려고 이 시간에 들이닥친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고. 그… 나도 좀 바꿔볼까 싶어서. 그… 잠자리라던가, 뭐 그런… 똑같은 곳에서만 자면 질리니까..."



그때 다시 한 번 우르릉 하고 하늘이 우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무심코 앞으로 발을 뻗어 삼장의 침실에 완전히 들어와버렸다. ...다리가 조금 떨렸던 것 같다. 삼장이 한참을 바라보더니 크게 한숨을 쉰다. 아, 제기랄. 들켰다. 왜 온 건지 들켰다고. 방금 그 천둥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더 작았는데, 이건 천둥이 아니고 삼장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다. 천둥이 아니고 삼장이.


잠시 말없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정확히 말하면 삼장은 날 빤히 쳐다보고, 내 시선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이곳 저곳 맴도는 상황이 아주 잠깐 동안 이어졌다.



"나 여기서 자면 안돼?"

"… 내가 어쩌다 이런 귀찮은걸 주워와선…"



삼장이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곤 창가에 걸터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이제 엄청나게 얻어맞거나, 엄청 소리를 지르거나, 엄청 잔소리를 하거나, 엄청 째려보거나, 엄청 한심해하거나 뭐 그 중 하나겠지. 아 젠장, 솔직히 얼마나 어이없겠나. 비 온다고 새벽에 뛰어와선 여기서 자면 안되냐고 묻는 게… 나 스스로도 내가 한심해 고개를 푹 숙이고 발가락만 꼼지락 댔다. 오늘따라 처분이 늦네. 삼장도 어이가 없어서 사태파악이 잘 안되나.

 


"뭐해? 잔다며?"

"어?"

 


어느새 삼장은 침대에 들어가 앉아 내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벽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간 채, 이불 한 쪽을 열어놓고서.

 


"… 자도 돼?"

"꾸물댈거면 돌아가. 난 당장 자야겠으니까."

"아, 아니. 잘께. 잡니다. 고맙습니다."


삼장이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 얼른 침대로 밀고 들어가 가져온 베개를 베고 누웠다. 삼장 침대가 크긴 하지만 아무래도 1인용 침대여서, 서로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야 했다. 가까스로 찾은 자세가 묘하게 삼장과 딱 달라붙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삼장의 체온에 훅 따뜻해진 덕에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슬쩍 시선을 올려 삼장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않고 눈을 감은 것을 보니 지적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하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좀 흔들렸다.



"…뭘 웃어? 기분 나쁘게."

"아니, 그냥. 그보다 왜 안자고 있던 거야?"

"…잠이 안 와서."

"역시 삼장도 혼자 자기 무서웠던 거지?"

"죽고 싶냐."


괜시리 다시 한 번 대놓고 빤히 쳐다보았다. 시선이 느껴졌는지 삼장이 감았던 눈을 떠 잠시 바라본다. 오고 가는 시선에서 묘한 공방이 이어졌다. 솔직히, 무서워서 못 잔거지?


"...자꾸 쓸데없는 말 할 거면 당장 돌아가."

"아뇨. 잡니다. 자겠습니다. 잠들었습니다."

신경질적으로 다시 눈을 감은 삼장이 손으로 내 뒷통수를 찍어 누르는 통에 빠르게 빌었다. 돌아가라면서 침대에 얼굴을 찍어 누르면 어떡해. 아프다고.

 


 

좁은 이불 안에서 몇 차례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곧 서로의 작은 숨소리만이 오고 갔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새 비가 잦아든걸까? 이렇게 금방 멎을 거였으면 조금만 더 참아볼걸. 쪽팔리게. 그래도 다시 방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움직였다간 진짜로 혼날 것 같고. 게다가 지금 편하고. 삼장은 내 머리를 감싸던 손은 치우지도 않은 채로 잠든데다가… 편하고. 졸려오기 때문에… 눈이 조금씩, 감긴다.

 

 


잠들기 직전에 하나만 확실하게 하자면,

나는 삼장이 걱정돼서 온 거다. 비가 무서운게 아니라.









[삼장의 변명]

 

경내의 불이 모두 꺼진 지도 한참 지난 시각. 비바람에 온 창문과 귓속이 울려대는 통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살짝 걷어 창 밖을 바라본다. 평소라면 고즈넉한 적막이 내려 앉아있어야 정상인데, 오늘은 밤새 비가 쉴새 없이 몰아친다. 이런 밤은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지 않는다. 온갖 잡념이 머리를 뒤흔들어 놓는 통에 골이 다 쑤신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것은 전부 이 폭풍때문이다.


사실 비 오는 날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비가 오면 그 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눈을 감고 떨쳐내려 해봤자 그날과 같은 빗소리가 귀에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올 뿐이다. 이럴 때엔 잠을 포기하고 아예 일어나있는 것이 낫다. 아예 몸이 지쳐 쓰러질 때 쯤이면 잠들 수 있으니까. 속으로 경을 읊어도 봤지만 소용없긴 매한가지다.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집어 들고 창가에 걸터 앉았다. 라이터에 가스가 얼마 남지 않아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불이 붙었다. 라이터를 슬슬 바꿔야하나. 귀찮게 됐네. 낮에 팔계의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오정의 라이터라도 두어 개 가져왔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했다. 뭐 그랬다간 오정이 시끄럽게 굴게 뻔하긴 하지만, 딱히 신경 쓸만한 점은 되지 못한다. 젠장. 성냥이 남은 게 있던가. 머리를 굴려 라이터 대용으로 쓸만한 것이 방이나 집무실에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집무실 서랍에 성냥갑이 하나 있었던 것 같기도… 라이터를 딱히 수집하는 취미도 없거니와 불만 붙이면 뭐건 상관없다는 주의라 라이터의 위치가 하나하나 생각나지 않는다. 경내에 흡연자도 딱히 없으니 불을 빌리기도 마땅치 않은 노릇이다. 오정과 팔계가 아마 내일 모래쯤 의뢰 보고 차 방문하던가… 그때 몇 개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 오정 그 놈이야 워낙 여기저기 쏘다니니 판촉용 라이터 몇 개 구하는 것 쯤은 일도 아니겠지만, 내가 라이터를 구하기 위해선 마을까지 내려가야 하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창 밖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그와 거의 동시에 귀를 찢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벼락이 꽤 가까운 모양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로 큰 폭풍일 줄은 몰랐는데. 귀가 먹먹해져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러고 보니 낮에, 팔계가 바보 두 마리를 데려다 놓고 비가 오는 날엔 귀신이 나온다느니 어쩐다느니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던 것 같기도 한데. 영양가가 전혀 없는 대화라 내용까진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걸 듣고 있는 바보 둘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오정이야 워낙 그 쪽으로 취약하니 온 얼굴 근육이 뒤틀려있던 것은 이젠 별로 이상하지도 않지만, 그보다 오공까지 얼굴을 잔뜩 굳히고 있던 것이 꽤 인상 깊었다. 야생의 감이 남아있는 건지 넷 중에 가장 감이 좋은데다, 귀신이니 뭐니 무서워했던 적이 없는 터라 새삼 얼굴 가득 긴장이 서려있는 꼴이 우스웠다. 물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팔계의 표정이 워낙 음침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여간 그런 쪽으론 이상한 재주가 있는 놈이다. 쓸데없지만. 어쨌거나 낮의 그 대화 탓인지, 저녁부터 심상치 않게 울어대던 하늘을 보던 원숭이의 표정이 좀 불안해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담배 하나를 다 태워 재떨이에 비벼 끌 때 쯤, 또 한차례 강한 벼락과 함께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쿡쿡 쑤시는 머리에 잠시 손을 댔다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들 때까지 라이터가 버틸 수 있을지. 어쩐지 오늘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아 묘하게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낮에 있었던 영양가 없는 대화를 떠올리며 귀를 가득 채우는 빗소리를 몰아내려 해도, 잠깐만 생각의 흐름이 끊기면 그 사이를 비집고 빗소리가 귀를 다시 채운다. 자연현상일 뿐이다. 알고 있지만, 좀처럼 내 정신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가 없다. 낮이었다면 원숭이가 온 방을 헤집어놓으며 소란을 피워대는 통에 이런 것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텐데. …젠장 그 소음이 그리울 정도라니 사태가 심각하다.


세 번째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기가 조금 더 힘들어졌다. 가까스로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빨아들인 뒤 연기를 뿜어냈다. 머릿속 잡념을 떨쳐내려 한 행위였으나, 당연하게도 별 소용은 없었다. 달밤에 피우는 담배는 사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지만, 비오는 날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모양이다. 구겨진 미간이 좀처럼 펴지질 않는다. 한번 더 연기와 함께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어쩐지 이번엔 귓가에 다른 소음이 섞여 들어온다. 창 밖의 빗소리가 아니라, 복도 쪽의, 발소리 같은.

 

 


새로운 소음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방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이제까지보다 다섯 배 정도 더 바보 같은 표정의, 오공이 그곳에 서있었다.

 

 

 


 

"… 뭐냐 너."

"…어…어?"


새벽 세시가 넘은 시각. 원숭이가 곯아떨어지기도 한참 됐을 때인데,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에 당황해 묻자 오히려 더 당황한 듯 횡설수설이다. 바보가, 정말 어떻게 된 건가.


"자는 거 아니었어?"

놈이 되묻는다. 지금 내가 묻고 있잖아.

"신경 꺼. 그보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뭐하는 거냐 네놈은."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열어젖힌 문고리를 붙든 채 우두커니 서있는 놈을 바라보았다. 놀라야 할 사람은 내쪽인데 왜 본인이 저러고 있는 거야. 그리고 시선 끝에, 오공 손에 쥐어진 베개를 발견했다.



"…그건 또 뭐야."

"에… 그러니까 이건 말야. 그, 잘 때는 필요하잖아. 베개가."

…날 화나게 하려고 하는 건가?

"...그딴 헛소리 하려고 이 시간에 들이닥친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고. 그… 나도 좀 바꿔볼까 싶어서. 그… 잠자리라던가, 뭐 그런… 똑같은 곳에서만 자면 질리니까..."



그때 다시 한 번 벼락이 강하게 쳤고, 드디어 멍청하게 서있기만 하던 놈이 발을 움직여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방으로 쏟아졌다고 해야 하나. 꼴을 보아하니, 저건 무서운 거다. 비 오는 날 혼자 자는 게.


잠시 말없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정확히 말하면 눈동자를 빙빙 돌리는 놈을 일방적으로 내가 쏘아본 모양새지만. 놈도 제 꼴을 들켰다는 자각은 있는지, 아까보다 더 당황한 눈치다.



"나 여기서 자면 안돼?"

"… 내가 어쩌다 이런 귀찮은걸 주워와선…"



하아… 참았던 한숨이 한번에 터져 나왔다. 세 번째 물었던 담배가 아직 길지만, 더 피웠다간 정말 속까지 늙어버릴 것 같아 재떨이에 비벼 껐다. 제 발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 영락없이 혼나길 기다리는 꼬맹이다.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침대에 기어들어가 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발만 꼼지락대고 있다.



"뭐해? 잔다며?"

"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내어놓은 침대 한 켠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 자도 돼?"

"꾸물댈거면 돌아가. 난 당장 자야겠으니까."

"아, 아니. 잘께. 잡니다. 고맙습니다."


평소보다 더 요란스러운 모양새로 몸을 밀고 들어온다. 역시 1인용 침대에 둘이 자는 것은 조금 벅찼던 건지, 자세를 잡기가 영 불편하다. 결국 서로 바라본 채로 착 달라붙어 누운 꼴이 됐지만, 이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새로운 자세 찾기를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뭐, 잠이 안 왔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고, 어쩐지 슬슬 잠들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도록 할까. 묘하게 느껴지는 시선과 함께 웃는 기척이 느껴져 다시 눈을 뜨고 오공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숨기고는 있지만, 웃음을 참는 꼴이 훤하다.



"…뭘 웃어? 기분 나쁘게."

"아니, 그냥. 그보다 왜 안자고 있던 거야?"

"…잠이 안 와서."

"역시 삼장도 혼자 자기 무서웠던 거지?"

"죽고 싶냐."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저와 동급 취급 하는 것이 불쾌해 눈을 감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으나, 다시 한 번 시선이 느껴진다. 이게 허락해줬다고 기어오르지.


"...자꾸 쓸데없는 말 할 거면 당장 돌아가."

"아뇨. 잡니다. 자겠습니다. 잠들었습니다."


잠들었습니다는 또 뭐야. 당황하는 꼴이 우스워 웃음이 새어나올 뻔 한 것을, 놈의 뒷통수를 침대에 찍어 누르면서 가까스로 참아냈다. 아, 역시 이게 같이 있으면 귀찮아져.

 


 

좁은 이불 안에서 몇 차례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곧 서로의 작은 숨소리만이 오고 갔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새 비가 잦아든 건지. 이젠 빗소리보다도 오공의 어린애마냥 높은 체온과 숨소리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아, 그러고 보니 뒷통수를 잡고 있던 손을 치우질 않았는데. 하지만 이 좁은 침대에 팔을 둘 자리를 다시 찾기도 불편하고. 이대로 두기로 했다. 귀찮아. 그리고. 졸리다. 조금씩. 잠이 든다. 아, 그래도 이번엔 몇 시간 푹 잘 수는 있을지도.

 

 


잠들기 직전에 하나만 확실하게 하자면,

나는 이 원숭이가 하도 귀찮게 굴어서 어쩔 수 없이 내 침대에 재우고 있는 거다. 딱히 비 때문이 아니라.






2016년 1월 31일 티스토리 업로드_포스타입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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